[아이돌보미 수기] 사랑하는 아이들아, 무럭무럭 자라렴! (동작구 건강가정지원센터 이기순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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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결혼해서 25년간 전업주부로 아이들을 키우고 살았습니다. 맏아들의 맏며느리로 시집와서 두 딸을 교육하고 정신없이 중년을 보내며 내가 아이돌보미가 될 줄을 어디 상상이나 했을까요? 우연한 기회로 50세에야 뒤늦게 대학에 입학하여 가정 관리학을 전공하고 밤샘을 하면서 보육교사 공부를 하고 어린이집에서 실습했습니다. 그러던 중 조카의 소개로 동작구 건강가정지원센터의 아이 돌보미로 일하게 되었지요. 그때 나이가 55세였으니, 내 두 아이를 키웠던 손으로 남의 아이들을 돌보자니 한편으로는 기대 반, 걱정 반이었습니다. 

 처음 5년 동안은 5세에서 9세까지의 아이를 돌보는 시간제 근무를 했는데, 때로 어떤 가정은 저를 파출부로 여기며 무례하게 대하기도 하여 속이 상했던 적도 있습니다. 또 때로는 시간에 맞추어 이집 저집 돌아다니다 보면 밥 먹을 겨를도 없어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빵이나 우유로 식사를 대충 때울 때는 무력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아이가 쑥쑥 크고 기간이 끝난 후에도 아이 부모님과 계속해서 연락이 닿아 아이들의 소식을 받을 때면 얼마나 보람 있고 뿌듯한지요. 

 때마다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제공해주는 아이 돌보미 교육을 받는데, 아이들 수준에 맞추어 이야기하는 법, 재미있는 손 놀이를 배우는 것, 놀이 도구를 만드는 수업이 참 즐거웠습니다. 같이 일하는 다른 선생님들의 후기를 듣는 것도 재미있었고요. 말을 잘 듣지 않는 아이들을 만나면 내 자식 키울 때를 생각하면서 어르기도 하고 훈계를 하기도 하면서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노라니 흐뭇했습니다. 초등학교 가기 전의 아이들을 돌보다 그 아이들이 길에서라도 저를 만나면 "선생님, 보고 싶었어요. 언제 우리 집에 또 오세요?"하며 인사할 때는 정말 '아, 내가 이래서 이 일을 계속하는구나!'라고 느낍니다. 

 저는 한 가정과의 인연을 소개하고 싶어요. 한 가정은 2014년도에 만났던 10개월 된 쌍둥이 가정이었는데, 이 가정의 엄마는 아이를 간절히 갖고 싶어서 7년 동안이나 노력하다가 늦게서야 아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아이가 소중할까요? 그 엄마는 수시로 "선생님, 저는 정말 아이를 가지려고 안 해 본 게 없어요. 정말 잘 키우고 싶은데, 선생님은 아이를 어떻게 키우셨어요?"라고 묻곤 합니다. 그러면 저는 "애들이 기질이 달라요."라며 배운 것을 이야기해 주기도 하고, "우선 사랑하는 마음으로 감정적으로 너무 화내지 말고, 그냥 그렇게 하면 돼요."하면서 제가 아이 키운 경험도 이야기해 줍니다. 아이가 분유를 먹다가 이유식을 먹으며 성장했을 때, 그 오물쪼물 한 입이 어찌나 귀여운지요. 특히 제가 센터에서 배운 동요를 불러주고 율동을 해 줄 때, 아이가 웃으며 따라 할 때는 없던 힘도 솟아납니다. '아프지만 말고 잘 자라주렴.' 이런 마음으로 아이를 돌보게 됩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8시까지 아이네 집으로 가서 체온을 재고 환기를 시키고 온도와 습도를 잽니다. 아이 엄마도 제가 가면 그제야 씻고 조금이나마 집안 정리를 합니다. '또 지난 저녁부터 밤사이에 애들이랑 씨름했구나!' 아이 키우느라 고생한 젊은 엄마의 얼굴이 눈에 선합니다. 그래도 이 쌍둥이 녀석들이 어찌나 귀엽게 반기는지, 아침에 제 얼굴을 보면 좋다고 손사래를 치니 눈에 아른거릴 수밖에요. 그렇게 똑같은 일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따라 점심쯤 되었는데 두 아이가 모두 이유식을 잘 먹지를 않고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는 것입니다. 만져보니 살짝 열이 있습니다. 계속해서 열이 오르더니 아이가 울고 징징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일을 처음 겪는 아이 엄마가 얼마나 당황하는지, 사실 저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갓 돌이 지난 아기 두 명이 동시에 그렇기는 처음이니까요. 어떻게 해야 하나, 조금 기다려봐도 열이 내리지를 않았습니다. 우리는 결국 한 명씩 아이를 등에 업고 병원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아파트 단지 아래에 소아청소년과가 15분 거리에 있었습니다. 아이가 보채고 울기 시작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고 진땀이 나서 어떻게 병원까지 달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아이고 참! 어떻게 해요? 애가 등에서 설사를 했어요!" 아이 엄마의 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다른 한 아이도 제 등에서 "뿌지직, 뿌지지지지" 설사를 합니다. 아이 엄마는 깜짝 놀란 듯, "죄송해서 어떡하죠.", 저는 "괜찮아요. 아이들이 다 이렇지요."

 우리는 무언가 통하는 듯이 서로 땀을 흘리며 마주 보면서 웃었습니다. 다행히 이 떡두꺼비 같은 쌍둥이는 병원에 가서야 열이 잡혔습니다. 설사를 치우고 닦아주느라고 또 아이 엄마는 밑에서 기저귀를 사 오고 서로 하나도 정신이 없었지만, 이날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알 수 없는 묘한 연대감을 느꼈습니다. 

 지금은 사정으로 다른 가정에서 아이 돌봄을 하고 있지만, 계속해서 쌍둥이 가정과는 연락하며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사진으로 받아 보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열이 나서 병원으로 달려갔던 때를 생각하면 "휴, 정말 큰일 날 뻔했어!"라고 떠오르면서도, 아이들이 잘 크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따뜻해져 옵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받기를 원하고 특히 어린 아이는 사랑과 관심을 먹고 자랍니다. 저는 제가 부족하나마 그런 사랑을 가정에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일이 거창하고 사회적으로 크게 보이는 일은 아닐지라도 아이들과 가족의 인생에 추억을 만들어 가는 심정으로 돌보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이가 분유에서 이유식을 먹는 첫날, 처음으로 걸음마를 하는 날, 갑자기 열이 나서 병원에 간 날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러한 소중한 가치를 알려주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건강이 닿는 한 계속해서 아이 돌보미를 하고 싶습니다. 

 끝으로 항상 열심히 수고해주시는 센터의 선생님들과 함께 고생하는 돌보미 동료들에게 감사합니다. 여전히 세상은 아이들이 잘 클 수 있는 아름다운 토양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아 제 맘이 따스해집니다. 

 "사랑하는 아이들아, 무럭무럭 자라렴!"

출처 : 아이돌보미 수기집 2016. 여성가족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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