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프로젝트 후기] 아빠는 내 단짝 친구

아빠는 내 단짝 친구

2022 아자프로젝트 우수후기 공모전 우수 (김훈태 | 용산구가족센터)

 

1. “아빠랑 놀면 재미없어!”

아이가 말을 제법 하기 시작하면서 자주 내뱉는 말이다. 주말이면 무기력한 아빠의 게으른 육아는 늘 아이에게 핀잔을 듣기 일쑤다. 레고놀이를 할 때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할 때도 아빠는 재미없다며 엄마만 찾는다. ‘내가 뭘 잘못했지?’ 아이 앞에서 나는 문제가 뭔지도 모르는 영락없는 바보가 되어버린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내게 청천벽력 같은 숙제를 내준다. 

“이번 주 토요일에 별다른 스케줄 없지? 아빠랑 아이 둘이서 참여하는 용산구 가족센터 프로그램 신청해놨거든.” “약속은 없는데 뭔 프로그램이야?” 

“어, 아빠는 요리사라고 아이와 대화하며 요리하는 수업이래.” 

아빠가 아이와 요리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듣는 순간 당혹스러웠다. 아이와 외출할 때면 간혹 통제 안 되는 아이의 버릇없는 행동 때문에 큰소리를 내곤 했는데, 같이 요리까지 해야 한다고?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2. 이런, 아빠는 요리사라니!

첫 번째 수업 날. 늦잠을 잔 터라 씻는 둥 마는 둥 하고 아이를 차에 태워 용산구 가족센터로 향했다. 차는 왜 이리 밀리는지… 첫날부터 지각이다. 강사님의 강의가 끝나자 드디어 요리가 시작된다. 오늘 만들 음식은 밥케이크와 바나나주스다. 혼자서 하면 참 쉬운 일인데 아이와 ‘함께’ 만들기라니… 위생장갑을 끼고 재료를 다듬는데 아이는 자꾸 딴청을 부리며 돌아다닌다. 여러 사람이 함께 있는 자리라 큰소리로 혼내지 못하고 눈살을 찌푸리며 쏘아볼 뿐이다. 요리하면서 아이를 돌보다 보니 이마에 절로 식은땀이 나고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해졌다. 이렇게 난처할 때면 아내가 늘 아이를 어르고 달래는데 나는 그걸 잘하지 못한다. 아이 입장에서 아빠가 재미없겠지만 아빠 입장에서도 아이랑 단 둘이 시간을 보내는 게 힘겹고 고달프긴 마찬가지다. 힘겹게 바나나주스와 밥케이크를 만들고 센터를 나서니 아내가 기다리고 있다. 아이는 ‘엄마’를 부르며 달려간다. 그리고 자신이 아빠랑 만든 거라며 자랑을 늘어놓는다. 

‘아, 이 수업을 두 번 더 해야 한다니. 어쩌지?’

다른 아빠들은 어떨까?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아빠와 아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빠가 아이와 죽이 잘 맞고 깔깔대며 요리를 했다. 어쩌면 철이 없어 보이던 그 아빠는 의무감이 아니라 진정 그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아빠라는 부담감을 잠시 내려놓고 아이의 ‘친구’가 된다면, 아이와 ‘함께’ 아빠도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아이와 함께 아이가 되기. 어쩌면 아빠의 육아란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3. 그렇게 아빠도 친구가 된다.

두 번째 수업의 요리 주제는 개구리버거였다. 오늘은 또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 나갈 것인가? 나의 예상을 빗나가지 않고 아이는 산만하고 제멋대로다. 아침밥을 잘 먹지 않는 아이는 강사님 말씀은 듣지 않고 오늘 만들 요리의 재료를 만지작거린다.

“아빠, 이 홈런볼 먹어도 돼?” 이 수업을 듣기 전이라면 “안 돼! 먹지 마! 이따 필요한 재료란 말이야.” 

이렇게 짜증 내며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아이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하기. “그래? 우리 이따 개구리버거 만들 건데 버거를 2개 만들려면 홈런볼이 몇 개 필요할까?” 아이는 고사리 손을 꼽아보며 4개라고 말한다. “맞아, 그럼 우리 4개만 남겨두고 먹어볼까?” “예스!(요즘 아이가 성취감을 느끼거나 기분 좋을 때 내뱉는 단어다) 아이도 점점 그렇게 변해가고 있었다.

아이는 첫 수업 이전보다 좀 더 주의 집중력이 좋아졌고, 적극적으로 요리에 참여하려 한다. 첫날에는 ‘그러는 거 아냐’ ‘안 돼’ ‘조용히 해’ 이런 말을 많이 했다면 두 번째 수업에서는 ‘이것만 도와줄래?’ ‘이건 네가 할 수 있을 것 같아’ ‘다른 친구들은 모두 조용히 만들고 있는 것 같은데?’ 이렇게 완곡하게 말하는 연습을 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아이를 보살피고 가르친다는 생각을 버리자. 아이와 재미있게 놀아주자. 

보살피는 아빠가 아니라 함께 노는 친구 같은 아빠가 되어야 한다.

 

4. 30년 전 일기장을 꺼내며

‘아빠는 요리사’ 프로그램을 끝내고 이제 나는 더 이상 영혼 없는 아빠 놀이를 하지 않는다. 아빠로서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기 시작했다. 다그치고 훈육한다는 마음가짐이 아니라 나도 어린 시절 추억 속으로 돌아가 함께 아이가 된다.

요즘에 아이와 즐겁게 하는 놀이는 미로 그리기와 미로 찾기다. 처음엔 내가 미로를 그리면 아이가 미로 찾기를 했는데, 이제는 반대다. 아이가 미로를 그리면 내가 미로 찾기를 하는데, 아이가 무척 즐거워한다. 내가 어렵게 풀면(사실을 어렵게 푸는 척인데) 깔깔대며 아빠를 놀린다. 아빠가 아이의 친구가 되면 육아가 즐거워진다. 아빠가 정색을 하고 훈육을 하면 아이와 교감하지 못하고 힘든 육아의 함정을 피할 수 없다.

나에겐 초등학교 시절 쓴 일기장 몇 권이 아직도 있는데, 요즘 잠자기 전에 아이와 함께 그 일기장을 읽는다. 

30년도 넘은 이야기인데 아이는 일기장에서 어린 시절 아빠가 울고 웃고 까부는 이야기가 그렇게 재밌나 보다. 아빠가 거짓말을 해서 할아버지에게 혼나거나, 큰아빠와 싸우고 울거나, 수업 시간에 도시락을 몰래 먹은 이야기… 아빠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나는 아이 곁에서 아이와 함께 자라는, 늘 변함없는 친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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