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가족학교 후기] 부부사이에도 가끔은 멍석이 필요해요

부부사이에도 가끔은 멍석이 필요해요

2020 서울가족학교 우수후기 공모전 우수(정진주/도봉구센터)

 

2017년 늦여름, 12월 결혼을 앞둔 우리는 새로운 가정을 꾸린다는 기대에 한껏 들떠 있었다. 내 옆에 있는 남자는 내 이상형 조건 중 하나였던 ‘내 아이의 아빠가 되었으면 좋겠다’ 싶은 사람이었다. 우리는 결혼을 앞두고 결혼식, 신혼집, 신혼여행 등 결혼이라 하면 먼저 떠오르는 물질적인 것들 뿐만 아니라 결혼 전 건강검진, 연인간 의사소통 강연 등 건강한 부부관계를 위한 정신적인 준비도 틈틈이 챙겼다.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된 것이 서울가족학교의 예비부부교실이었고, 우리부부의 서울가족학교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2주간의 교육을 받으며 오랜 시간 행복한 부부로 잘 살기 위해 부부간의 관계와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 깨달았다. 그 후 마음 한 켠에 우리 가정의 행복을 위해 알짜배기 밑거름이 되어준 서울가족학교 교육에 좋은 첫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결혼을 하고 어느덧 3년이 지나 우리 부부 사이에도 우리를 닮은 사내아이가 태어나고, 가족의 성장주기를 따라 신혼기 부부에서 양육기 부모가 되었다. 아이가 태어나니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면서 비로소 온전한 가족을 이룬 듯 했지만, 그 속에는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역할의 변화와 갈등이 숨어있었다. 밤낮없는 육아에 치어 나는 점점 사라져가고 부부간에 서로 대화할 시간도 부족했지만, 눈치껏 서로를 도와가며 현실에 적응해 나갔다. 확실히 둘 뿐일 때보다 서로를 보살필 여유가 줄어서 지금 현재 서로의 모습을 다시 바라볼 기회를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가 부부가 될 때 예비부부교실에서 큰 영감을 받았던 것처럼 좋은 계기를 만들고 싶어서 서울가족학교 신혼부부교실을 신청했다.

 

예전에는 직접 교육장소에 가서 폴라로이드 커플사진도 찍고 다른 커플들과 모둠활동도 하고 그랬는데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으로 교육이 진행되어서 색달랐다. 화상교육이지만 우리 얼굴을 보이게 비디오를 켜서 강사님과 소통하며 강의에 집중할 수 있었다. 강사님께서 자신의 결혼생활을 빗대어서 강의해 주셔서 더 흥미로웠고, 역시 경험보다 값진 보물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혼기는 부부생활의 뿌리가 되는 시기라는 말씀에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시기가 앞으로 남은 반평생 삶의 질을 결정하겠구나 싶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강의를 열며 강사님께서 신혼부부가 겪는 차이들 중 우리 부부가 겪었던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하셨다. 여러 가지 중 “생활습관의 차이”라고 대답하니, 어떻게 해결했는지에 대한 팔로우 질문을 하셨다. 그러자 신랑은 “저희는 사수, 부사수가 있어요.”라고 말하며 못 하는 사람이 잘하는 사람을 따른다고 대답했다. 신랑의 답을 듣는 순간 ‘아아, 우리도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실이 꼬이지 않게 실타래를 풀고 있었구나.’ 생각이 들면서, 우리 삶 속에 스며있어서 미처 못 본 것을 전지적 시점으로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질문의 크기가 삶의 크기를 결정한다는 말처럼 교육 중 던지시는 질문을 통해 평소 인식하지 못했던 우리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돌아보게 되었다.

 

교육내용 측면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생활사건과 트라우마사건과 관련된 부부갈등에 대한 부분이었다. 평소 가랑비같은 사소한 생활사건들이 쌓이다가 어느 순간 폭우같은 트라우마사건이 생기면 우리는 입고 있는 역할의 옷이 무거워져서 옷을 벗고 본연의 나로 돌아가고 싶어진다고 했다. 그래서 부부사이에는 젖은 옷을 함께 말릴 수 있는 햇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비유에 감탄하며 신랑이 쓴 노트를 슬쩍 보니 ‘부부간 서로가 원하는 행동은 젖은 옷을 마르게 하고, 옷을 바짝 말려줘야 트라우마사건이 생겼을 때 머리를 같이 합쳐서 해결이 가능하다’고 필기가 되어 있었다. 내 입으로는 말하기 껄끄럽지만 배우자가 알게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 알아차리게 해주어서 감사했고, 나 또한 젖은 옷을 말리기 위한 노력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정서통장에 대한 부분이다. 평소 부부간에 긍정적인 감정을 저축해서 정서통장을 빵빵하게 채워야 갈등이 생겼을 때 쓸데없는 소비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젖은 옷을 말리는 햇볕과 정서통장이 비슷한 맥락으로 느껴졌고, 가족과 함께하는 행복한 시간으로 삶을 꾸며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교육 후 그의 일환으로 토요 패밀리데이를 만들어서 양가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짬이 날 때마다 집 근처 산책로를 걸으며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소중하게 챙기게 되었다. 또 신랑이 좋아하는 조기축구모임을 이해하고 지지해 줄 아량이 생겼다. 행복한 부부생활의 치트키를 알게 되어서 좋았다.

 

서울가족학교 프로그램을 알게 된 후 신기한 점은 결혼을 준비하거나 결혼생활을 시작한 주위 또래 부부가 있으면 부부교육을 추천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디서도 듣지 못하는 부부생활에 대한 고급 정보들을 나만 알기 아쉬워 자꾸만 공유하게 된다. 한 번은 갓 결혼한 신혼인 친구가 우리집으로 놀러와 서울가족학교 브로셔를 보여주며 신혼부부교실을 알려주었다. 그 친구는 10년 가까이 연애를 한 끝에 사랑의 결실을 맺은 부부인데, 나의 추천에 “우리 부부는 평소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왜 굳이 멍석을 깔고 그런걸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라고 말했다. 친구의 말에 나는 당황스러웠고, 사람마다 관점의 차이에 따라 부부교육 접근성 자체가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부부도 대화가 부족해서 부부교육을 듣는 것은 아닌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지 어려웠다. 신혼부부교육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그 친구에게 해 줄 확실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신혼부부교육은 ’내 결혼생활이 올바른 방향으로 잘 가고 있는건지 확신을 가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친구가 말한 멍석이 불편할 수도 있지만, 나와 배우자의 결혼생활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될 수도 있다. 당장은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우리도 모르게 간과하는 가랑비에 옷 젖는 잘못된 부분이 있는지 돌아볼 수 있고, 관계가 더 좋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주옥같은 팁도 배워갈 수 있다.

 

부부교육을 듣고 난 후 항상 내 옆에 함께하는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되었다. 또 우리 부부가 살아가는 모습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기왕이면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게 된다. 소소한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며 부부만의 색깔을 가지고 우리답게 사는 것이 가장 멋진 부부의 모습이 아닐까. 부부 사이에 문제는 언제나 존재할 수 있고 부부관계에 정답이 없지만 해답은 있는 것 같다. 부부가 가는 방향이 맞는지 아리송하고 나침반이 필요할 때면 가끔 멍석을 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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