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가족학교 후기] 아이를 낳고 사는 이유를 찾아가는 중입니다

아이를 낳고 사는 이유를 찾아가는 중입니다

2023 서울가족학교 우수후기 공모전 / 대상 / 아버지 교실 (성북구센터/길균)

 

“이러니 아이를 안 낳지.”

육아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 전년도 합계출산율이 0.78이었다는 뉴스를 떠올리면서. 아이가 감기에 걸리거나 해서 유독 칭얼거림이 심해질 때는, 한숨만큼이나 자주 이 말을 뱉으며 아이를 달랬다.

내가 꿈꾸던 아빠로서의 삶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나의 아버지는 가정보다 일을 우선하며 살아온 분이었다. 자연스레 은퇴 뒤에도 가족들과 서먹하게 지내셨다. 그런 아버지를 보며 결심한 것이 있었다. 나는 저런 아빠가 되지 않겠다고,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꼭 친구 같은 아빠가 되어주겠다고…

그런데 막상 아빠가 되고 나니 이게 쉽지가 않았다. 아이는 자라면서 계속해서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가졌다. 재밌게 갖고 놀던 장난감, 까르르 웃으며 넘겨보던 그림책에도 금방 흥미를 잃었다. 놀이를 주도하는 아빠가 아니라 아이의 변덕에 끌려가는 기분으로 놀이 시간을 보냈다.

아빠가 잘 이끌어 주지 못한 탓인지 아직 2살도 안 된 아이인데 벌써부터 훈육을 고민할 만한 행동들을 보였다. 잡고 싶은 물건들을 잡지 못하게 하면 분노발작을 일으켰다. 먹을 것을 던지거나 다른 사람의 눈을 찌르면서 헤헤 웃기까지 했다. ‘안 돼’하면서 행동을 제한할수록 재밌다고 더 반복하는 아이를 보고 있자면 가슴이 내려앉다 못해 화가 치밀었다.

이렇듯 일찍부터 육아가 생각대로 되지 않고 있으니 더 많이 한탄하게 된 것 같다. ‘이러니 아이를 안 낳는다’는 말로.

그러다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보내준 공지문을 받았다.

‘아버지 교실’

‘1차시 교육: 효과적인 훈육-부모의 도덕심은 자녀 마음의 거울’

‘2차시 활동: 아이와 함께하는 오감놀이 및 신체놀이활동’

무조건 참석하기로 했다.

“필기는 안 하셔도 됩니다.”

강사분은 아빠들이 들고 있는 볼펜을 내려놓게 하고는 자리에서 일으켜 세우더니 검지손가락으로 공간 한가운데 가상의 선을 그려 보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아빠로서의 점수를 매겨보고 방금 그린 선 위에서 자기 위치를 찾아가 달라고 하셨다. 선의 앞쪽이 1점, 맨 뒤가 10점 만점이었다.

나는 몇 점짜리 아빠일까? 평소라면 한참을 생각했을 질문이지만, 최근 아이에게 화를 냈던 것이 마음에 걸려서인지 나 자신에게 큰 점수를 줄 수가 없었다. 2~3점 정도의 점수를 떠올리며 선의 앞쪽에 서버렸다. 다른 아빠들은 선의 중간 정도 위치에 줄을 섰다. 내 앞에는 아무도 서지 않았다. 당황스러웠다.

“왜 그 점수라고 생각하세요?”

강사님이 나를 지목하며 물었다.

나 자신에게 너무 박했던 것 아닌가 싶어, 슬쩍 뒤로 갈 기회를 엿봤지만, 이미 늦은 터였다. 질문에 솔직하게 답하기로 했다.

최근 아이에게 안 되는 행동을 가르쳐주려 하는데 잘되지 않아 화를 낸 일이 있었는데, 그 후로 아이가 아빠를 보는 눈이 달라진 것 같다고.

정말 그랬다. 아이가 '아빠'를 부르는 횟수가 부쩍 줄어든 것 같았고, 내가 옆에 있어도 엄마만 찾는 것 같았다. 단어 몇 개를 겨우 말할 수 있게 된 18개월 아기의 마음을 알 수는 없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부모가 전부일 수밖에 없는 시기라서 당연히 엄마 다음 아빠에 의지할 거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엄해진 아빠를 3순위로 밀어내고 애착 인형을 엄마 다음으로 의지하게 된 듯한 눈치였다.

나의 대답을 들은 강사님은 뒤의 아빠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다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나처럼 극단적으로 낮은 점수를 매기지 않았을 뿐.

강사님은 그런 아빠들의 고민을 헤아려 주듯 훈육의 기본 원칙들을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가며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줬다.

훈육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 일관성이라는 것은 TV 속 육아 전문가들을 통해서도 익히 들어온 말이기에 새로운 정보는 아니었다. 하지만 머리로는 알아도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단어가 '일관성'이다. 매일 운동하러 가다가도 몸이 아파 쉬고 싶은 날이 생기기 마련이고,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주지 않겠다고 다짐해 놓고도 칭얼거리는 아이를 달래다 지쳐 유튜브 동영상을 틀어주기도 한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다.

강사님도 이런 어려움에는 공감해 주셨다. 하지만 그런 것을 이겨내는 것이 훈육이라며 거듭 일관성을 유지해야 함을 강조하셨다.

"많이들 하는 말 있죠? 이번만이야!"

갑작스레 튀어나온 강사님의 생활 연기에 아빠들이 공감하며 웃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그 말을 이번만 된다고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냥 되는 걸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아이는 경험을 통해서만 배우기 때문이에요."

힘들어도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부모들은 리모컨처럼 멀리서도 '안 된다', '하지 마'라는 말로 아이를 훈육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아이는 경험하기 전까지는 그 행동을 하면 안 되는 이유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설명이었다.

때문에 허용되는 경험을 하면 그건 해도 되는 행동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육아 원칙을 정하면 엄마와 아빠가 그것을 공유하고 아이에게 일관성 있게 적용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이 말이 큰 도움이 됐다. 엄마는 하지 않는데 아빠만 하는 '안 돼'를 아이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해도 되는 행동을 아빠가 괜히 못 하게 막아버리니 혼란을 느꼈겠지? 괜히 아이에게 미안해졌다.

아빠들의 질문이 이어졌고 강사님은 실제 아이와의 대화에서 아빠가 해주면 좋을 말들을 직접적으로 알려주며 일관성 있는 훈육에 대한 아빠들의 걱정을 덜어주었다.

아직 아이는 겨울에 여름옷을 입겠다 고집할 나이는 아니었지만, '5분만 밖에 나가보고 입을 수 있는지 보자'라고 말하는 방법은 분명 나중에 잘 써먹을 날이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지는 놀이법 강의도 훗날 도움이 되리란 생각으로 잘 기억해 두기로 했다. 당장은 아이가 너무 어려 배운 놀이들을 해볼 수 없을 테니까. 역시나 아이는 놀이 강의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 재료로 제공된 건빵만 먹으려 했다. 그렇지만 더는 조급한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이가 훈육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이해하고 나니 그동안 느끼던 어려움의 크기가 적잖이 줄어 있었다. 일관성 있는 육아를 하라는 조언의 의미가 다르게 들린다고 할까? 그동안은 엄마, 아빠의 초인적 인내를 요구하는 말처럼 해석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아이에게 지금 하고 있는 훈육하는 의미를 경험하게 해주라는 말로 들린다.

나만의 비약일지도 모르겠지만, 당장은 이 생각의 변화가 아이와 나의 관계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아직 아이가 아빠를 부르는 횟수는 늘지 않고 있지만 애착 인형보다는 아빠를 더 좋아해 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훈육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아이에게 내가 가르칠 것들의 이유를 경험하게 해줄 생각이다. 덕분에 마음의 여유가 생긴 지금은 틈틈이 찾아볼 수가 있게 된 듯하다.

'이러니 아이를 낳고 산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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