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가족학교 후기] 평범한 일상의 행복

평범한 일상의 행복

2023 서울가족사업 우수후기 공모전 / 장려상 / 패밀리셰프 (서초구센터/이지혜)

 

2023년 9월 23일 토요일, 아침부터 분주하다. 10시에는 명동에서 은행수업, 2시에는 마포에서 발레수업, 4시에는 서초구 가족센터에 가야한다. 얼추 스케줄이 잘 맞아떨어진다 했더니, 발레선생님이 아이 동영상을 찍을 때 여러 번 화를 내셔서 시간도 늦고, 아이도 기분이 좋지 않다. ‘아니, 이거 다 아침부터 너를 위해서 엄마가 예약하고 준비한 건데...’ 괜히 시무룩한 아이 때문에 기분이 상한다. 아이랑 후다닥 5호선에서 2호선으로 환승을 하고 열심히 뛰었다.

시작 2분 후, 가까스로 들어갔더니 강사님께서는 가족 소개를 진행하고 계셨고, 아이와 조용히 지정석에 앉았다. 놀랍게도 오늘 모든 가족들이 100프로 참석이다. 다른 가족들은 오늘 프로그램에 기대가 부풀어 있었고, 나랑 우리 딸은 조금 긴장해서 강사님만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 차례가 되어, 딸은 우리 가족을 소개했다. “우리 가족은 화목한 가족입니다. 엄마, 아빠, 나 세 명입니다.” 남편은 진해에서 근무 중이라 주말부부로 지낸지 1년, 육아와 살림을 맡아 아이랑 둘이 일상을 보낸 지 1년이 됐다. 아이는 2학년이 되었다. 육아에 열성적인 나는 학교 가기 전에는 아이와 잘 놀아주고 책 열심히 읽어주는 ‘착한 엄마’였다. 그런데 아이가 학교에 가고 점점 학업의 비중이 커지면서 우리 집 식탁은 공부방이 되었고, 난 ‘무서운 엄마’가 되었다.

강사님께서 마을 지도를 나눠주셨다. 오늘 미션은 지도에 나와 있는 떡 가게와 반찬 가게에서 떡 반죽과 식혜를 사오는 것이었다. 딸은 미션을 수행하는 걸 너무 좋아해서 지도를 보자마자 환한 미소를 짓는다. “엄마, 우리 빨리 나가요. 빨리요.” 나를 붙잡고 나가는 딸을 보면서 나는 또 천천히 걷자, 넘어질라, 다른 가족들과 같이 가야 한다, 차 조심해라, 잔소리가 나온다. 옆에서 가만히 아이들이 하는 대로 발맞춰 즐겁게 걸어가는 가족들을 보니 나도 조금 미안하다. 그냥 아이가 하자는 대로 하면 되는데 왜, 이게 쉽지 않을까.

아이는 강사님이 알려주신 대로 가게에 들어가 인사도 잘하고, 식혜와 떡을 사왔다. “우리 딸 잘했어.” 아이 눈을 보면서 손을 꼭 잡아주었다. 딸이 환하게 웃는다. 돌아갈 때는 그냥 아이의 발걸음에 맞춰 걸었다.

돌아오니 자리에는 색색으로 놓인 고명과 접시가 준비되어 있었다. 아이는 벌써 신이 났다. “엄마, 엄마, 나 이거 만들어서 아빠 갖다 드릴래요.” 고사리 같은 손으로 떡 반죽을 동그랗게 빚어 딸기 고명, 카스테라 고명, 초코 고명에 골고루 묻혔다. 고명가루가 지저분하게 떨어져서 눈에 거슬린다. “주아야, 좀... 차분하게 해야지. 이게 다 뭐야.”라고 말할 뻔했다. 만일 집이었으면, 내 눈에 레이저가 나오면서 아이에게 잔소리 대잔치였을텐데, 옆 테이블에 인자하게 미소 짓는 다른 어머니를 보자, 아까 아이가 퀴즈를 맞춰 선택한 ‘잔소리 방지권’이 생각나서 참았다. ‘그냥 너를 있는 그대로 봐주면 되는데... 고명이 떨어지면 닦으면 되고, 옷에 묻으면 빨면 되는데 왜 엄마는 예쁘고 바른 딸에게 자꾸만 이럴까....’ 엄마 생각도 모르고 아이는 내 입에 딸기 경단을 넣어준다. 환하게 웃는 딸내미, 나도 웃는다. 딸은 주섬주섬 준비해온 반찬통에 아빠에게 드릴 경단을 색깔별로 정리했다.

강사님께서 가족들이 떡을 만들고 식혜를 먹을 동안,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가족의 소통하는 방법, 가족 구성원이 하는 역할, 아이들이 원하는 것들.

결혼 11년차, 9살 딸 우리 세 가족. 중요한 것은 어쩌면 어려운 것이 아닌데. 결국 사랑은 표현하는 것이고 엄마로서 아이의 있는 그대로 모습을 인정해주고, 기다려주면 되는데. 일상에서는 까맣게 잊어먹고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사님께서는 수업을 마무리 하시면서 부모님들에게 아이에 대한 칭찬을 하게 하셨다. 나는 우리 딸이 모든 일에 열정을 가지고 꾸준히 해내는 아이라고 칭찬했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 나랑은 다른 모습의 아이라는 칭찬의 말을 받아, 강사님께서는 상장을 주셨다.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기에 이 상장을 수여합니다.” 아이는 상장이 너무 마음에 든다고 했다. ‘그래 주아야, 너의 열정이 너를 크게 성장하게 할 거야.’ 엄지를 들어 반겨주었다.

실은 아까 지하철이 늦게 올까봐 마음이 조마조마해서 조바심을 냈다. ‘내가 왜 이걸 신청했을까’ 하는 후회도 조금했었다. 끝나고 나오는 길, 한 손에는 내 손을 잡고 한 손에는 아빠를 줄 거라면서 떡이 든 반찬통을 든 아이를 보니, ‘오길 잘 했다’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추석맞이 떡이나 만들고 체험이나 하자는 생각이었는데 와서 보니 ‘패밀리셰프’라는 이름이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우리가 함께 만든 것,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것. 그건 거창한 것이 아니고, 특별한 게 아니라는 것. 일상의 음식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조금씩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아이와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면서 마음이 따뜻해지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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