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구] 찾아가는 아버지교실 참가 후기 (2014년, 조준규)
"짧지만 길게 추억될 시간"
아버지교실을 처음 소개받았던 때는 어느 주말이었습니다. 그때 전 너무나 좋아하는 스포츠 중계를 보면서, 휴일의 마지막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때 살며시 아내가 다가와 종이 한 장을 내밀더군요. 종이에는 '찾아가는 아버지교실' 이란 프로그램에 대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이게 뭐?’라는 제 표정을 읽었다는 듯이 아내가 말했습니다.
“내가 간다고 했어. 어린이집에 맨날 나만 갔잖아. 당신하고 수현이 하고 같이 하면 좋을 것 같아서..”
일단 피식 웃음을 지었습니다. 또 나에게 어떤 희생을 아무런 상의 없이 강요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요.
전 늘 이런 식이었습니다. '나는 가장으로서 이 가정을 위해서 너무나 많은 것을 희생하고 있다. 설거지, 빨래, 놀러 가기 등등 모든 나의 행동을 내가 희생하였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이렇게 생각하던 제게 프로그램이 그리 달갑지 않았던 것은 너무도 당연했습니다. 그러나 ‘어린이집도 가보고 좋은 이야기도 들어봐라’는 아내의 말에 마지못해 해보기로 했습니다.
드디어 수업 날. 토요일 아침이면 늘 늦잠 자던 딸이 스스로 일어나 분주히 돌아다니더군요.
"아빠 뭐해 갈 준비해야지?" "그래 알았어, 알았어."
이렇게 딸과 함께하는 둘만의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말없이 뒤에서 지켜보며 자녀가 원하는 것을 하게 해 주는 것이 아빠가 할 일의 전부라고 생각
'해 줄' 필요 없이, 같이 경험하며 이야기 나누는 것 역시 소중한 시간이 된다는 것을 발견
필요하다 생각했지만, 방법을 몰랐던 '대화', 이번 기회에 해답 하나를 얻은 것 같아
저는 늘 말없이 뒤에서 지켜보면서 자녀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아빠가 할 일의 전부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때부터 겪게 된 일들은 그동안의 제 생각과는 사뭇 다르더군요. 자녀에게 뭔가 해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냥 같이하면 되더군요.
예전에는 여행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 가족들을 제 카메라 앞에 세웠습니다. 수많은 여행을 하며 좋은 경치를 보았지만, 한 번도 그것에 대해 가족과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건 부모로서 해야 할 역할을 다하는 거다'. '이건 아이에게 좋은 경험이 될 거다', '가족에게 지식, 추억을 쌓게 해 주는 것이다.' 같은 의미들을 부여하면서, '그러므로 가족과 이야기할 필요 없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랬기에 그동안 제가 해 온 아빠로서 해야할 역할이란, 수현이가 갖고 싶은 것은 사주고, 수현이가 하고 싶은 것은 그냥 해주고, 수현이가 가고 싶은 곳은 그냥 가고, 그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 많은 사진을 찍는 식이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이제는 같이 걸으며 같은 대상을 보고 그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제가 지금까지 했던 일들과는 다른 무엇인가를 느끼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흔히 ‘대화가 필요하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정작 대화를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는 쉽게 그 답을 찾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저조차도 그랬듯이 말이죠. 그러나 이번 기회에 해답 하나를 얻은 것 같습니다. 대화란, 대화를 위한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닌, 작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같이 하는 것. 그냥 마음을 열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라는 것을…
앞으로도 딸과 둘이서 할 무언가를 찾게 해준 ‘서울시 찾아가는 아버지교실’에 감사합니다. 짧지만 길어질 시간에 대한 알 수 없는 기대가 제게 미소를 짓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