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가족상담지원사업 참여후기] 나는 스포일러였다 (부제 : 아들인생 드라마의 스포일러 부모에서 존중과 응원을 보내는 부모로!)
나는 스포일러였다 (부제 : 아들인생 드라마의 스포일러 부모에서 존중과 응원을 보내는 부모로!)
2024 서울가족사업 참여후기 공모전 / 최우수상 / 가족상담지원사업 (성북구가족센터_김미사)
#가출 #눈물 #자기객관화 #꼰대 #네비게이션 #스포일러 #불안 #존중 #응원
저와 아들 사이에는 오랜 갈등이 있었습니다. 이 갈등은 아들이 고등학교에 들어가 학업에 흥미를 잃고 게임에 몰두하기 시작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군 입대와 제대까지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아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갈등은 계속되었고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게임 문제로 서로 심하게 부딪치게 되었고, 마침내 아들은 중대결심을 하고 그날로 가출을 감행했습니다. 경찰의 도움을 받아 아들을 찾았지만, 아들은 독립선언을 했습니다.
평소 아들과의 갈등이 너무 고통스러워 ‘이렇게 서로 고통스럽게 지내느니, 차라리 서로 따로 지내는 것이 좋겠다’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아들이 독립을 하겠다고 하니까, 지금 아들을 떠나보내면 아들을 영영 잃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들었습니다. 모자간에 최소한의 관계성을 회복하고 그 후에 독립을 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관계 회복의 방법을 찾게 되었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성북구가족센터에서 하는 ‘서울시 가족지원상담’을 알고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상담을 받으려면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듣고 포기하려고 했는데, 마침 상담을 신청했던 가족이 취소하면서 가족상담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정말 저에게 행운이었습니다. 무엇 보다 당장 내일이라도 독립을 하겠다고 고집하던 아들의 마음이 조금 누그러져서 10주간 가족상담을 받은 후에 최종 결정을 하겠다고 해서 상담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남편도 바쁜 와중에 기꺼이 가족상담을 받겠다고 응해줬습니다.
상담을 시작하기 전 가장 망설여졌던 것은 개인적 가족 간의 문제를 상담자에게 오픈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첫 상담일에 상담 선생님은 우리 가족의 문제를 덤덤히 받아주셨고, 신기하게 상담을 받으며 나의 문제를 꺼내놓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꼈습니다. 10회기 상담이 끝나면 우리 가족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 될 것 같은 기대감도 생겼습니다.
상담 첫날, 상담시간 내내 제 눈에서는 소리 없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냈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그 다음에도 저의 눈물이 계속되었습니다. 멈추지 않는 눈물 때문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내 의지로 컨트롤되는 부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다 쏟아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상담 회기 전반부를 눈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 제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평소 아들과 남편과 대화를 할 때는 대화가 잘 되지 않고, 서로 마음이 상한 채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상담과정을 통해서 시간을 정하고, 순서에 따라 대화를 진행하다보니,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가 생겨나고, 자신에 대해 좀 더 객관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들과 남편도 이 부분이 가장 좋았다고 합니다.
이런 자기객관화를 통해서 제 속에 감춰진 슬픔과 불안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제 눈에서는 눈물이 계속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때 상담선생님은 제가 눈물을 흘리며 슬픈 이야기를 하면서도 웃고 있는 모습을 보니, 그동안 감정을 꾹꾹 누르며 살아오신 것 같다고 말씀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저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고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또 아들의 감정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다는 말처럼 지난 시간 아들의 행동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지 못하고, 기다려주지 못한 것, 지적하고 빨리 고쳐주려고 했던 저의 조급함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나 남편은 소위 꼰대 같은 부모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에서 때로는 네비게이션이 되고, 스포일러가 되었습니다. 인생을 먼저 살아본 입장에서 가장 최적의 길을 안다고 생각했고, 아들이 그 길로 가도록 네비게이션처럼 안내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이것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들은 미래를 알 수가 없는 처음 가보는 인생길에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도 있지만, 동시에 기대와 설레임도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두려움과 불안, 기대와 설레임이 공존하는 가운데서 인생의 드라마를 써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하고, 시행착오도 하면서 갔으면 하는데 엄마와 아빠는 너무 똑똑(?)해서 미리부터 문제를 알려주고 해결책까지 가르쳐 주려 한다고 답답해했습니다.
아들 말을 듣고 보니, 제가 본의 아니게 아들 인생에 스포일러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영화를 볼 때, 줄거리를 모르고 결말을 모르기 때문에 긴장이 되고 걱정도 되지만, 그로 인해 몰입하게 되고 영화의 즐거움에 빠져듭니다. 그런데 옆에서 누가 자꾸 ‘저 사람 나중 죽는다...' ‘재들 결국 헤어져...’ 이런 식의 스포일링을 한다면 얼마나 김이 새고 짜증이 날까요?
상담을 통해 제가 본의 아니게 자꾸 스포일러 노릇하는 이유가 아들에게 있지 않고, 저의 불안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제 지나친 두려움과 불안의 뿌리는 남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남편은 마흔 살이 되기도 전에 모야모야병이라는 희귀병으로 뇌경색이 와서 뇌수술을 받았습니다. 또한 심장혈관에 문제가 생겨 스탠트 시술도 받았습니다. 이로 인해 저는 지나치게 걱정이 많아졌고, 두려움과 불안에 시달렸습니다. 그리고 이런 두려움과 불안이 아이들에게 그대로 향했습니다.
제가 이 불안을 극복하는 길은 아들의 인생을 지켜보면서 내 경험으로 결과를 판단하지 않고 아들이 웃을 때 같이 웃고, 아들이 울 때 같이 울어주고 응원이 필요할 때 응원해주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마치 좋은 영화를 추천해 주고, 또 같이 영화를 보면서도 옆에서 스포일링을 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이 아들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고 존중이라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제 마음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게 되자 아들도 마음에 안정을 찾아가는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세 사람이 가족상담을 받다보니, 각자 속에 있는 이야기를 충분히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또 기회가 생긴다면, 아들도 개인 상담을 통해 못다 한 마음속의 이야기들을 꺼내놓고 자기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저와 남편도 부부상담을 통해 둘만의 문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갖기를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