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서울가족학교-패밀리셰프 참여후기] 환대, 그 넉넉함 안에서
환대, 그 넉넉함 안에서
2024 서울가족사업 참여후기 공모전 / 우수상 / 서울가족학교(패밀리셰프) (성북구가족센터_고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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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여간의 인도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돌아온 서울의 8월은 너무나 더웠다. 인도는 한낮 온도가 50도가 넘는 일도 적지 않은데, 서울이 더 덥게 느껴졌던 건 단지 날씨 때문일까? 하루라도 빨리 일상의 안정을 찾았으면 좋겠는데, 복직하기 전에 약간이라도 쉴 시간이 필요한데, 그래야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인도에서 정든 선생님과 친구들과 헤어져 새로이 관계를 빚어가야 하는 6살 딸아이의 마음도 찬찬히 보듬어 주고픈데, 밀려있는 은행 업무와 건강검진 및 병원진료, 9월로 예정되어 있는 복직 준비만으로도 하루 종일 땀이 마를 새가 없었다. 인도로 가기 전에 살았던 곳으로 다시 돌아왔으면 그나마 좀 수월했으련만, 처음 살아보는 이곳은 내가 한국으로 돌아온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낯설었다. 온도와 습도의 교차점에서 빚어지는 체감온도가 온몸을 휘감듯 낯섦과 책임과 부담으로 범벅된 일상이 끈적끈적하게 마음에 엉기는 날들이 이어졌다.
아파트 공동현관문 앞에서 ‘성북소리’를 발견한 날도 그런 날들 중 하나였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조금이라도 알게 되면, 마음이 선풍기라도 켠 듯 조금이라도 시원해질까 싶어서 집에 들어가자마자 펼쳐 보았고, 서울가족학교-패밀리셰프 프로그램에 대한 공지를 확인하자마자 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마음 한 켠에 저장되어 있었던 “엄마랑 요리했으면 좋겠는데...”, “나도 해 볼래”, "엄마, 내가 도와줄까?" 라는, 내가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따라 하고 싶어 하는 딸아이의 음성이 연결음과 함께 재생되었고 꼭 참여하고 싶다는 마음도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요..."로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8월 부모 교육 참여가정을 우선 대상으로 한다는 수화기 건너편 담당선생님의 안내에 그동안의 힘겨움은, 유부 안에 간신히 우겨져 있었던 밥 뭉치처럼 비어져 나왔고 그러면서 통화는 안내가 아닌 개인상담과 닮은 모양새가 되었다. 내 이야기를 귀담아들은 선생님은 이미 공지된 대로 참여가정을 모집하되, 남는 자리가 있으면 꼭 연락을 주겠다고 하셨고, 일주일 여의 시간이 흐른 후 나는 관련 메세지를 받을 수 있었다. 신청 사유에 '성북에 마음 붙이고 살고파서'라고 쓰면서, 나는 마음속 여백에 이제는 이곳에 정붙이고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쓰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자리에 앉자마자 느낀, 다정함과 생기가 가득한 분위기는 정영미 강사님의 단감처럼 잘 익은 진행 솜씨와 시간과 의지를 내어 준 가족들이 함께함의 풍성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따듯한 소망이 빚은 열매였을 것이다. 마음속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준비된 감정카드와 질문은 그동안 집이라는 공간만 공유했을 뿐 시간과 감정을 공유하지는 못했을 수도 있는 가족들이 소통의 문을 열 수 있도록, 너무나 익숙해서 또는 이미 잘 안다고 생각해서 업데이트되지 못한 저마다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열쇠가 되었다. 나에게 설문지를 주고 ‘자녀가 알고 있는 것을 큰 소리로 대답할 수 있나요?’, ‘자녀가 감정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설명할 수 있나요?’라고 질문한다면, ‘(그렇다고 확신하며) 아니요’와 ‘(잘 모르겠지만...)아니요’라고 답했을 텐데, “선생님이 모르는 문제를 물어봐요. 어떤 마음이 들까요?”라는 강사님의 질문에 딸아이가 일어나서 마이크를 잡고 “슬픈 마음”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 온몸의 감각을 깨우는 레몬에이드처럼, 함께함의 의미와 가치를 일깨우는 순간이었다. 아이의 감정을 잘 읽어 주면 아이의 관계 증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강사님의 조언과 내가 아이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는 생각 하는 것들을 수정하거나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가져야겠다는 생각은 함께 나란히 새겨 두었다.
함께 테이블에 앉은 가족은, 알고 보니 딸아이와 같은 유치원 다른 반에 다니는 동갑내기 여자아이의 가족이었다. 서울로 온 후로 나는 육아동지를, 딸아이에게는 하교 후 함께 놀 수 있는 친구를 아직 사귀지 못한 탓에 우리는 너무나 기뻤고, 덕분에 함께 요리를 하는 시간의 즐거움은 배가 되었다. 프로그램이 마친 후에는 근처 어린이공원으로 자리를 옮겨 나는 수다로, 딸아이는 놀이로 수박화채처럼 산뜻하고 달달한 오후를 보냈고, 저녁 무렵이 되어 집에 돌아올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나는 배가 고프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단지 오전에 센터에서 유부초밥을 만드는 족족 먹어버려서만은 아닐 것이다.
패밀리셰프 프로그램은 나와 새로이 삶의 터전이 된 성북, 나와 딸아이와의 연결 뿐 아니라 우리 가족과 다른 가족이 연결되는 바늘과 실이 되었고, 그 바늘과 실로 나는 오늘도 일상이라는 천을 짜고 있다. 누군가의 따듯함과 성실함, 세심함이 피부를 할퀴어대는 뙤약볕 아래서 어찌할 바 모르고 서 있던 나에게 그늘막이 되어 이 여름을 견디어 낼 수 있었음을 기억하며, 내가 짜내고 있는 오늘이라는 일상이 마음이 시려 울 수도 있는 누군가에게 가 닿기를, 햇살 담은 담요가 되어 지금이라는 시간을 통과하는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