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우수참여후기 장려 "은평코드를 찾아라"

은평코드를 찾아라

2019 부자유친프로젝트 우수 참여후기 장려상/은평구센터 최장한

 

어느 날 아이들 엄마가 뜬금없이 토요일마다 어딜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둘째 지민(8, 여)이가 은평구민 체육센터에서 진행하는 인라인 수업을 신청할 때 첫째 건(12, 남)이도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찾다가 신청했던 부자유친프로젝트에 가야 한다고 했다. 토요일 오후 4시는 아이들 미사를 위해 성당에도 가야 하는 시간으로 프로그램 종료 시간과도 겹쳐졌기에 부자유친프로젝트는 괜히 신청한 귀찮은 존재로 가족들 사이에서 정리가 되어갈 때쯤 첫 번째 날을 맞이했다.

한옥마을 박물관, 진관사는 이미 몇 번씩 다녀온 곳이기에 특별한 의미도 아니었고, 심지어 지민이는 한옥마을 내에 위치한 어린이집을 졸업했었기에 정말 감흥이 없었다. 게다가 첫날 한옥마을 박물관에서 참여 가족과의 만남은 문화적인 쇼크라 할 만했다. 가족 구호를 만들고 발표하는 시간에 다른 가족들의 적극적인 참여에 “잘못 왔다” 싶은 마음이 나와 건이 사이에 흘렀다. 특히나 부녀간의 참가 가족들의 구호에는 정말 손발이 오글거릴 정도였다. 참가 자녀 중 건이가 나이도 가장 많고, 이런 참여를 하기엔 아이가 성숙한 편이기도 했기에 나와 아이 모두 불편했고, 마지못해 간단하게 소개했던 기억뿐인 시간이었다. 첫날답게, 박물관이란 장소답게, 일방적인 설명과 경청의 시간으로 구성된 첫날은 오글거리는 첫인사 발표만을 남긴 채, 미사 시간을 이유로 중간에 일찍 나온 날로만 남았다.

 

결정적으로 부자유친프로젝트가 의미 있는 시간이 된 건, 둘째 지민이의 “불” 봉산 산행 참가였다. 아이들 엄마 사정이 생겨서 인라인 수업을 빠지고 함께 참여한 이 날부터 첫째 건이도, 나도 좀 더 적극적인 참여가 가능해졌다. 나와 건이에 비해 활달한 지민가 함께 하자 말도 많아지고 참여도 적극적으로 임하게 됐다. 물론, 아빠와 아이들에 대한 퀴즈를 풀고 상품을 받는 시간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평소 북한산 둘레길을 여유 있게 쉬엄쉬엄 오르던 산행과 달리 가파른 코스로 빠르게 올라간 산행이 아이들에겐 너무 힘들지 않나 싶었지만, 땀 흘리고 숨차하며 올라간 봉산에서의 풍경은 첫날 느낀 “잘못 왔다”는 감정과 정반대의 상쾌한 감정이었다. 산행이 주는 성취감에 아이들도 만족해했고, 봉수대 만들기 시간도 아이와 함께, 아빠와 함께 뭔가를 만들었다는 의미가 있었던 시간이 됐다. 이 날을 기점으로 건이도 지민이도 토요일을 기다리게 됐다. 물론 아빠인 나는 피곤했다.

 

셋째 날인 “글”, “셋이서 문학관” 수업이 부자유친프로젝트의 의미를 가장 확실히 느낀 날이 아닌가 싶었다. 무작위로 나눠준 그림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시간에서, 대외적인 말과 행동이 조심스러운 첫째 건이의 자신감이 부족했던 발표가 안타까웠는지, 나답지 않게 손을 들고 이야기의 엔딩을 장식하게 됐다.

“지금까지의 모든 이야기는 뱃속 극장 할머니의 영화 이야기였습니다.”

적절한 그림을 받은 행운 덕에 참여 가족들에게 가장 큰 호응을 받고 상품도 받게 됐다. 아빠가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상품도 받았다는 즐거움이 건이와 지민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 은근히 뿌듯함을 느꼈던 순간이다.

 

“은평은” 과 아빠 이름인 ”최장한”으로 삼행시를 짓는 시간에는 자칭 아웃사이더의 삶을 살아온 치기로 예상치 못한 히트를 쳐버렸다. 제시어 “은평은”이 주는 은평구와 부자유친프로젝트의 의미를 포함한 모범적인 답을 요구하는 너무 뻔함에, 늘 그래왔던 아웃사이더다운 반발 심리가 장난기로 발동됐다. 앞선 릴레이 이야기를 성공적으로 했다는 여유도 한몫을 했을 것 같다.

은 : 은릉 일어나

평 : 평생 잘 거냐

은 : 은제까지 잘 거야

 

최 : 최 건!

장 : 장가가라

한 : 한 번만 가라

 

너무 진지했던 앞선 참여 가족들의 발표들 속에서 빵 터져버린 순간을 만들었다. 끝나고 성당을 향하는 차 안에서 엄마에게 그날 이야기를 들뜬 목소리로 설명하는 둘째 지민이가 한없이 사랑스러웠다. 아들 건이도 자기 이름이 들어간 삼행시에 다들 웃어준 상황이 기뻤던지 엄마와 할머니에게 삼행시를 수차례 반복했었다.

 

마지막 “태극기” 시간에, 진관사에서의 다도 시간과 진관사 태극기 이야기도 몇 달이 흐른 지금까지도 아이들 입으로 소환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부자유친프로젝트 참여를 좋은 기억으로 남길 수 있었던 것은 봉산 산행과 아빠 이름 삼행시 짓기 시간이었던 것 같다. 주최 측의 잘 짜인 프로그램에 수동적으로 참여해서 얻는 지식보다, 아이들과 작지만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함께 공유한다는 게 내가 내린 부자유친프로젝트의 최고 가치가 아니었나 싶다.

엄마에 비해 아빠와의 시간이 부족한 현실에서, 일주일의 하루를 오롯이 아이와 함께, 낯설고 불편할 수도 있는 공간에서 이야기를 만들고, 그날의 공기를 함께 호흡하고 그 공기의 냄새까지도 추억으로 남길 수 있다는 것은 작지만 소중한 행복이었다고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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