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가족학교 후기] 안 되는 것을 되게 해준 ‘2021 서울가족학교’

안 되는 것을 되게 해준 ‘2021 서울가족학교’

2021 서울가족학교 우수후기 공모전 예비부부교실 최우수 (영등포구센터/임지수)

우리는 군인부부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세 나이에 바로 육군사관학교 사관생도로 입대해서 남자는 군 생활 14년차, 여자는 군생활 13년차... 뼛속까지 매서운 각자가, 재작년 벚꽃 만개한 포근한 봄에, 충북 영동군 한 부대에서 서로 만났습니다. 연애는 그만하고 얼른 결혼하고 싶다는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평생 연애만 하고 싶다는 여자는 연애시절 참 많이도 다퉜습니다. 그 남자의 절도 있는 모습과 굵은 목소리가 참 좋았지만, 여자 나이 서른여섯인데 늦은 나이에 만나 서로 차이점을 이해하면서 같이 살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여자 주변에 수많은 여군들을 관찰해도 결혼 전 그렇게 멋있는 커리어우먼이었는데, 결혼하고 육아에 치이면서 남편과 아이가 전국 각지로 흩어져 사는 모습이 어쩜 그렇게 힘들고 지쳐 보이는지, 결말을 아는 상황을 스스로 선택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전투복 입은 서로의 똑 부러진 모습과 확실한 주관이 좋았지만, 그게 또 서로를 불편하게 했고 다툼으로 이어졌습니다. 서로 말이 험하다고 비난했고, 주장을 굳히지 않는다고 탓했습니다. 그렇게 1년간 치열하게 싸우고 사랑하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2020년 10월 17일, 마스크를 쓴 하객들의 축하 속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결혼 이후의 삶을 그렇게도 걱정하던 내가 사랑의 콩깍지가 제대로 씌웠나 봅니다. 평생 화장 한번 해본 적 없던 뼛속까지 군인이었던 제가 그날 새벽부터 곱게 화장하고 면사포를 쓰고 결혼식 버진로드를 사뿐히 즈려밟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결혼생활이 행복할 수만은 없겠죠. 기분 좋게 한강 나들이를 갔다가도 서로를 또 이해하지 못하고 다투고 돌아와서 한동안 등을 돌리고, 즐거운 금요일 밤 치킨을 먹다가도 갑자기 정색을 하면 주말 내내 냉랭한 분위기가 이어졌습니다. 서로가 닮아서 싸우기도 하고 서로가 다른 차이점에 당황하며 싸우기도 했습니다. 제가 예상했던 결혼생활이 계속될 것만 같은 불안한 생각이 드는 가운데 영등포구 인터넷 카페에서 우연하게 ‘2021 서울가족학교’를 알게 됐습니다. 평일에는 열심히 나라 지키는 군인으로 각자 살다가, 짧은 이틀 주말에 부부로 삶을 살고 있는데, 3주 동안 이 수업을 듣는 것이 처음에는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고 싶은 마음으로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이미 결혼은 했지만 예비부부 수업부터 차례대로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혼 전에 치열하게 싸웠던 것에 대한 원인을 주도면밀하게 분석하고, ‘안 되면 되게 하라!’ 어떻게든 해결해보려는 군인 근성이 발동했습니다.

코로나로 아쉽게 비대면 교육으로 진행됐지만, 비대면 교육이 가져오는 지루함은 없었습니다. 강사가 수업 시작 전에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해주었고, 본인의 거친 경험과 수많은 상담사례를 통해 들려주는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고, ‘아~ 우리 부부만 이런 것이 아니었구나.’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교육 내용은 분석적이고 체계적이었습니다. ‘사랑하니까 꾹 참아라.’ 같은 주옥같은 꼰대스러운 내용이 아니라 왜 우리가 그간 다툴 수밖에 없었는지를 정확하게 짚어주었습니다.

남편과 저는 겉으로는 전투복을 입어 비슷한 듯 보였지만, 속마음과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작년 무주 여행을 갈 때, 제가 그렇게 세심하게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했건만, 남편은 자기 몸 하나, 차 키 하나 가져왔을 때 저는 남편의 방식이 틀렸다고 나무랐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저는 안정형․신중형(SC)이고, 남편은 주도형․사교형(DI)으로 서로가 달랐던 것뿐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서로의 차이점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순간부터는 마음이 다소 편해졌습니다. 그런데도 마음이 불편할 때가 있으면 ‘나 전달법’을 잘 활용했습니다. 욕구 필요 리스트에 나온 다양하게 절제된 어휘들을 통해 제 감정을 솔직하게 전달하면서 남편을 무조건 탓하거나 비난하지 않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항상 큰 계기가 아니라, 툭툭 내뱉는 작은 말 한마디부터 시작된 큰 싸움이 서로에게 상처를 남겼던 지난 2년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결혼하기 전 예비부부로서 삶을 반성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나, 결혼 이후 한 집에서 같이 사는 환경은 또 다른 마음가짐을 필요로 한다는 생각이 들어 연이어 신혼부부교실도 신청했습니다. 연이은 모범 수강 덕분에 강사님도 저희 부부를 잘 기억해주시고 예상외로 많은 발언권을 주셔서 더욱 정신 차리고 교육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결혼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부부의 역할에 대해서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저 남자는 왜 도대체 청소하지 않는가?’ 제 마음 한가득 불만이 더욱 쌓이고 있었고, ‘저 여자는 왜 집안 물건을 죄다 함부로 버리는가?’ 남편 마음이 계속 불편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마음이 서로 요동칠 때, 이 수업을 통해 부부 역할 및 규칙을 정하고 생활습관을 맞춰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혼 초에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라는 일념으로 가사노동의 분담을 상대방에게 막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둘 다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직업을 가진 만큼, 서로를 더욱 이해하고 공평하게 나누는 것에 합의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남편과 차마 싸우지도 못했던, 우리 부부 사이에 금기시되어왔던 성(sex)에 대해서 이제야 속 터놓고 건강한 성(sex)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각자의 성격과 자란 배경과 성에 대한 가치관의 차이 등을 이해하면서, 지금 이 신혼뿐만 아니라 10년 차, 20년 차, 갱년기 후에도 둘 다 행복하고 만족하는 성생활을 만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완벽한 정답을 찾지 못한, 우리가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이기도 하지만 서로 말도 잘 꺼내지 못 했던 고민을 이제는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계기를 만들어준 이 교육에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지금도 물론, 가끔 우리는 서로에게 서운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서운함을 잘 표현하고 잘 대화하는 방법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10년 넘게 무뚝뚝하게 군 생활을 해왔지만, 이제는 서로 눈을 마주하고, 손을 따뜻하게 잡고 살갑게 대화하는 것이 오글거리지 않습니다. 처음 수업을 받았을 때보다 훨씬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우리가 처음에 겪었던 갈등을 지금 갖고 있는 군인 부부들도 주변에 많고, 군인 남편과 민간인 배우자가 만나 서로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봐왔는데 살며시 권유해주고 싶습니다. 서로 쳐다보지 않고 본인 할 말만 하지 말고 서로 눈을 바라보고 대화해 보길... 이 서울가족학교 프로그램이 제가 소망하는 ‘군인 부부’ 뿐만 아니라 서울시 거주하는 부부들 그리고 전국에 있는 부부들까지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쓴 이 내용도 그런 긍정적 바람에 일조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는커녕 결혼도 꿈꾸지 않고 살아온 한 여자가 한 남자를 만나 결혼한 지 어느덧 400일이 됐고, 임신 14주 차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2021년 서울가족학교를 두 번 성실하게 다녀온 뒤, 사랑과 전우애로 더욱 두터워진 우리의 관계가 쭉 지속되길 바라면서, 뱃속의 이 아이가 태어나 아동기부모교실, 청소년기부모교실, 아버지교실까지 잘 섭렵하는 그 날을 기대해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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