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가족학교 후기] 신혼부부의 삶을 바꾸는 마법학교 “우리도 부자될 수 있을까요?”

신혼부부의 삶을 바꾸는 마법학교 “우리도 부자될 수 있을까요?”

2021 서울가족학교 우수후기 공모전 신혼부부교실 우수 (노원구센터/정혜진)

 

‘결혼하면 돈 모으기 쉽다.’ 결혼 전에 어른들께서 해주셨던 이 말은 우리 부부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혼자일 때는 할 수 없었던 배달 메뉴 3개 시키기, 무작정 당일치기 여행의 매력에 푹 빠졌다. 물건을 살 때는 내 것만 사면 미안하니까 남편 것도 꼭 챙겼다. 결국 늘 두 개를 들이는 꼴이 되었다. ‘지금 아니면 또 언제 하겠어.’, ‘아이 생기면 못 쓴다더라.’, ‘둘이 버니까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생각이 무절제한 소비패턴을 부추겼다.

매달 커지는 카드 청구액을 보며 심장이 철렁한 것도 잠시 뿐이었다. 마이너스 통장이 구멍을 살뜰히 메꿔주었기 때문에 가계를 그럭저럭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직장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힘들게 일해 번 대가인데 이 정도 쓸 자격은 있다고 생각했다. 비싼 물건이나 명품을 사는 것도 아니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것을 보기 위해 쓰는 돈에 무슨 문제가 있으랴. 우리 부부의 YOLO(You Only Live Once)적 삶에는 기쁨이 넘쳤다.

부족함 없던 삶에 문제가 생긴 것은 결혼한 지 2년이 되어가던 무렵이었다. 집주인이 갑자기 전세금을 곱절이나 높여달라고 연락해왔다. 전세금을 올려주지 못 할 거면 몇 달 뒤 나가달라며, 미안하지만 자신도 사정이 좋지 않다고 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몇 년간 숨만 쉬고 살아도 모으지 못할 금액을 한 번에 달라니. 억울하고 원통했지만, 한낱 세입자에게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날 이후 현실 자각이 시작됐다. 부동산을 찾아가 이사 갈만한 다른 집들을 알아보았지만 되돌아오는 건 ‘불가능’이었다. 우리의 월급이 물가상승률만큼도 상승하지 않는 동안 전셋값은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며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저축해놓은 돈은커녕 신혼 초보다 불어난 마이너스 통장이 우리가 가진 전부였다. 당장 몇 달 뒤 살 곳이 없다는 생각에 매일 잠을 설쳤다. 그동안 왜 그렇게 살았을까 하는 후회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즐겁고 행복했던 과거의 기억들은 무분별하게 소비하느라 허비한 순간으로 바뀌었다.

결국 영혼의 티끌까지 모아 대출받은 돈으로 전세금을 내긴 했지만 매달 부담해야 하는 원리금의 무게가 삶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이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활 습관을 근본부터 바꿔야만 했다. 그러나 한번 늘어난 소비패턴을 줄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각종 유튜브와 경제 서적을 찾아보며 재테크 방법을 공부했지만 실제로 적용하기는 어려웠다. 돈 얘기가 나올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았고, 불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갈등이 생길 때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한숨과 걱정만 늘어났다. 재정문제를 토론하기 위해 얼굴을 마주하고 앉는 일조차 버거워졌다.

이런 시기에 참여한 노원구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신혼부부교실은 우리 부부의 메마른 재정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단비가 되어주었다. 신혼기의 재무적인 이슈와 갈등에 대해 차근차근 짚어보고 체크리스트를 작성해가면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었다. 특히 상대방이 어떤 소비를 할 때 행복을 느끼는지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강사님의 말씀은 우리가 가지고 있던 문제의 핵심을 찌르는 촌철살인이었다. 돈을 모으는 ‘기술’과 ‘수단’에 집중하느라 정작 소비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돌보는 일에는 무관심했다는 걸 깨달았다. 알고 보니 나는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소홀하게 대하는 남편의 태도에 불만이 있었고, 남편은 다른 소비를 줄이기를 원하는 내 태도에 서운해하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 어떤 소비를 할 때 가장 행복한지 대화를 나눴다. 스스로에게도 던져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 대화를 통해 나는 자기 계발에 관련된 소비를 할 때 만족감이 큰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외국어 공부와 자격증 취득 관련 강의에 쓰는 돈을 줄이는 데 예민했다. 반면에 남편은 함께 하는 경험에 대한 욕구가 큰 사람이었다. 주말 나들이를 위해 쓰는 비용은 꼭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서로의 소비 가치관을 확인하고 나니 지출을 어떤 방향으로 조정해야 하는지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주중 외식을 금지하고 불필요한 잡지출을 줄이되, 주말에는 멀지 않은 곳으로 나들이를 다녀왔다. 그리고 한 달에 1회 자기계발을 위해 쓰는 비용은 서로 존중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방식의 소비 습관 재설계는 부부간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이면서도 재무 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힘이 되어 주었다. 재무는 건전해지고 관계도 굳건해지는, 말 그대로 우리의 ‘애(愛)너지’가 쌓이고 있었다.

자신감이 붙은 우리는 신혼부부교실에서 배운 ‘소반훈련’도 실행하기로 했다. 소반훈련은 소비가 절반으로 줄었을 때를 가정하고 고정지출을 줄이는 연습이다. 살면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기에, 예상치 못한 큰돈을 지출해야 할 경우를 대비해 저축량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경험한 전세금 사태를 통해 소반훈련의 필요성에 절실히 공감했기 때문에 도전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아기가 생길 경우를 생각한다면 더욱더 미리 해두어야만 하는 훈련이기도 했다.

우리는 강사님께서 공유해주신 가계부 팁과 목표의 우선순위를 토대로 줄여야 하는 지출을 조금씩 조정해나갔다. 그러다 보니 줄일 수 없다고 생각했던 통신비와 각종 구독료, 관리비 등 고정지출들을 할인받는 방법을 알아낼 수 있었다. 마침내 절반의 지출을 하더라도 서로의 만족감을 지나치게 훼손하지 않는 선을 찾아내기도 했다. 이 계획대로 꾸준히 실천해 나가기만 한다면 공동의 비전을 가지고 가계를 건강하고 튼튼하게 꾸려나갈 수 있겠다는 목표가 선명해졌다.

신혼부부교실의 장점은 다른 부부들과 함께 수업을 듣는다는 데에도 있다. 지인에게 재정적인 고민과 부부 갈등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다들 아무 문제 없이 행복하게 잘 살고만 있는 것 같은데 나만 유난히 이런 고민을 하는 건 아닌지 두렵기 때문이다.

신혼부부교실은 이런 걱정의 벽을 허물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장이 되어주었다. 초반에는 내밀한 얘기를 모르는 사람들과 공유한다는 것이 어려웠다. 하지만 강사님의 세심한 지도 아래 조금씩 마음을 열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그동안 재정문제가 나만 겪는 일이라며 스스로를 깎아내렸던 나 자신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의 힘을 절감했다. 우리는 누구나 겪는 터널을 지나오고 있을 뿐이라고, 신혼부부교실을 발판 삼아 우리는 이 터널을 금방 통과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우리 부부의 재무 훈련은 현재진행형이다. 이제는 YOLO(You Only Live Once)가 아닌 WALT(We Always Live Together)로의 삶을 꿈꾼다. 소반훈련을 하면서 지출을 줄이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하지만 이제는 전과 다른 믿음이 있다. 당신과 내가 같은 마음으로 이 과정을 함께 하고 있다는 든든함. 그리고 목표를 이루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대단한 기술이 아니라는 것을. 서로에 대한 이해가 언제나 기본이고 밑거름이라는 것을 말이다. 평생 두고두고 간직할 마음가짐을 심어주신 노원구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신혼부부교실에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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