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프로젝트 후기]아빠가 해내서 기뻤어

아빠가 해내서 기뻤어

2023 서울가족학교 우수후기 공모전 / 최우수상 / 아자프로젝트 (강북구센터/최재석)

 

≪ 아자 프로젝트 – 소심한 아빠의 도전 ≫

‘내 삶의 힘이 되는 강북구 가족센터, 아자 프로젝트’의 참가 공고를 보고 선뜻 용기를 내어 신청했다. 2023년 여름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고 무더웠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시원한 청량감을 느꼈다.

무엇보다 기대 이상의 수준 높은 프로그램을 준비해주신 강북구 가족센터 센터장님과 아자 프로젝트 담당자님의 열정과 수고에 감사를 드린다.

늦은 나이에 결혼하여 예전 세대의 가부장적인 부모상 아래에 요즘 젊은 아빠처럼 주도적으로 아이와 함께 노는 친밀한 타입도 아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어정쩡한 아빠 노릇을 하고 있는 듯 하다. 자연스레 양육은 주로 엄마가 이끌어 간다. 항상 뒤에서 따라 가는 입장이 되다 보니 양육에 대한 피로감이 있었고 남편이 이끌어 주길 바라는 아내와 하나뿐인 딸아이와 이상하게 종종 갈등을 빚는 경우가 생겨서 마음이 불편하기도 하였다.

내가 참여했던 아자 프로젝트는 양육, 자녀 관계뿐 아니라 잘 드러나지 않게 가정 속의 내가 어쩐지 불편해서 참고 그냥 묵묵히 견디고만 있었던, 그동안 막연한 불편함의 정체를 꺼내 나와 마주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 1. 소심한 아빠의 첫 번째 미션 ≫

열 살, 벌써 사춘기가 올 나이는 아닌데 삐딱한 말투가 일상이던 우리 딸에게 넌지시 제안을 건넸다.

“리나야...,음. 이번주 토요일엔 아빠랑 도예체험 하러 빚다 공방에 갈까?”

“음.., 엄마도 가는거야?”

순간 나는 우리 딸이 나하고만 가면 어떤 반응일지 궁금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니, 아빠랑만 갈거야.”

“그래에..? 신난다~!”

도예체험을 기대한 탓일까, 아이는 다행히 가고 싶다고 해서 안도했다.

아내 없이, 아니 엄마 도움 없이 딸과 단둘이 데이트는 긴장감이 돈다. 예민하고 까칠한 기질을 가진 딸과 지내는게 솔직히 제일 어렵다. 전날 미리 준비물은 다 챙겨두었는데도 불구하고 안절부절하다.

걱정이 된 아내가 함께 가는 길만이라도 따라가려던 계획이 틀어지고 말았다. 아내가 급작스럽게 열이 나고 아파서 출발선부터 단둘이 나서야 했던것이다. 다행히 함께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아무 일은 없었고 잘 도착했다. 공방 강사님으로부터 설명을 들으며 준비된 도자기 흙을 가지고 나와 아이가 각자의 작품을 만들어 갔다. 먼저 흙을 만져보았다. 말랑말랑한 흙을 반죽하면서 어느새 잡념도 사라지고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쩐지 무거운 책임감에 휩싸여 나왔던 기분은 점차 흐려지고 있었다. 옆에 아이를 보니 아직 서툰 탓에 찌그러져서인지 찡찡대며 나에게 도와달라고 한다. 모양을 만들고 그림도 그리다 보니 어느새 세상에 하나뿐인 작품이 완성되었고 서로를 바라보며 연신 잘했다며 칭찬을 했다.

 

≪ 2. 파파들의 시간 ≫

살짝 기대된 두 번째 프로젝트는 아빠들만의 모임으로 볼링장에 모였다. 뭐 사실 그동안 교육도 같이 받고 서로 안면은 있지만 아무래도 멋쩍은 분위기 속 아자 프로젝트의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다. 아빠들끼리도 알아가는 시간이 주어졌다. 각자의 점수를 통해서 팀을 나누고 어색했던 분위기도 게임을 하면서 부드러워졌다. 은근히 스트레스도 풀렸다. 거기에 소소한 참가상품으로도 즐거웠고, 맛있는 식사로 속도 든든하니 기분이 좋았다. 아빠들만의 공감대 형성도 되니 활기가 생겼다.

 

≪ 3. 뜨거운 8월의 어느 멋진 날 ≫

세 번째 체험은 슬라임과 야크돔 클라이밍이다. 난생처음으로 가보는 아빠인 나조차 신기한 곳이니 아이는 오죽했을까? 특히 딸이 제일 솔깃했던 슬라임카페 - 장소선정이 참 매력적이었다. 이제 어느덧 아빠와 딸, 엄마 없이 외출하는 두 번째 체험이다. 두둥..! 밖에서 보던 허름한 모습과 다르게 너무나 화려했다. 아이도 휘둥그레해진 눈으로 입성했다. 만들어진 슬라임이 아니라 슬라임을 직접 만든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강사님의 설명을 따라 다양한 재료들을 섞어가며 만들어보니 어느새 내 손에는 신비스럽게 말랑말랑한 슬라임이 만들어졌다. 아이도 신기해함은 물론이고, 아빠인 나도 사실 신이 났다. 슬라임으로 가지고 노는 법을 배웠다. 다양한 방법으로 둘이 마주 잡고 놀다 보니 괜히 웃음이 새어난다. 거대한 슬라임으로 풍선처럼 부풀려서 아이가 그 안으로 쏘옥 들어가게 하는 체험은 최고로 아이가 황홀해했다. 아이와 놀아주려고 온 것이 아니라 어느새 같이 놀려고 이곳에 온 친구가 되어 있었다. 우리가 동시에 텔레파시가 통하듯 재미있게 놀았던 도구가 바로 ‘슬라임’이었던 것이다. 그간 함께 여러 장난감을 놀아도 공감 형성이 안 되는 느낌이었는데, 이번 기회에 다음에도 꼭 따로 이곳에 놀러 가자고 데이트 약속도 해두었다.

그다음 이어서 점심을 먹고 간 클라이밍. 역시 우리 딸은 날다람쥐처럼 쉴새 없이 오르고 뛰어내리고 위험한 코스도 겁도 없이 매우 잘하는 모습에 대견하기도 하고 같이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몇 번 오르락 내리락 하니 체력이 방전 되는데, 아이는 정말 에너자이저처럼 금방 충전되는 모양이다.

사실 우리 딸이 다섯 살 즈음, 나는 직장업무를 하다가 디스크가 터져 협착증 진단을 받고 생업도 중단해야 했었다. 왼쪽 다리 신경이 눌려서 제대로 걷지 못하고 절룩거리고 마비 증상이 왔다. 아이랑 달리기와 안아주기 같이, 몸으로 여느 아빠처럼 놀아주지 못해 늘 마음 한켠 위축되고 아빠로서 해줄 수 없는 무기력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 클라이밍을 하면서 다른 아빠들의 활기차고 건강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오기가 발동하여 열심히 오르고 내렸다.

“우와, 우리아빠 잘한다.”

딸의 칭찬에 좀 무리를 했는데 괜히 어깨가 으쓱 올라갔고 기분이 우쭐해졌다.

지금 물어보니 아빠랑 함께한 체험 중에 클라이밍이 제일 재미있었다고 한다. 왜냐고 물어보니,

“아빠가 어드벤쳐 미션을 해내서~~~!!!, 아빠가 해내서 기뻤어.”

아니, 내가 해내서 즐거웠다니.. 딸은 내가 불굴의 의지를 발휘해서 해내는 모습이 마치 본인이 해낸 것처럼 뿌듯하고 즐거웠던 것이다. 그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순간 순간 딸아이의 뾰로통했던 이유가 어쩌면 자신감 없는 아빠 모습이 싫어서 그랬을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새삼 깨달았다.

 

≪ 아자프로젝트 - 아자,아자,아자 파이팅 ≫

5월부터 시작된 아자프로젝트는 ‘아버지 교육’을 시작으로 아이와 다양한 체험과 더불어 ‘아빠 힐링시간’, ‘가족운동회’를 끝으로 5개월의 여정이 흘러 끝이 났다. 그동안 양육에 힘쓰던 아내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해보는 시간이었고 아이는 아빠와 함께하는 활동을 기다리고, 나와 함께 하고 싶어 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점점 성숙해져 가는 우리 딸과 놀 때는 테마나 콘텐츠 선택도 중요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무엇보다 같이 하는 것들이 아이 중심만이 아닌 어른인 아빠도 재미가 있었다는 점에서 만족한다. 거기에 더해서, 아내는 모처럼 잠시 휴식시간을 가지니 이건 모두에게, 각자 알맞게 좋았다. 앞으로 아이와 단둘이 할 수 있는 슬라임을 비롯해 이외에 다양한 놀이에도 도전해봐야겠다. 특히 깨달은 사실은, 바로 내가 자신감이 넘치고 즐거워야 아이도 힘을 얻는다는 것이다. 이제 그동안 소홀했던 운동도 하고 치료도 더욱 열심히 받을 것이다. 건강해져서 주말 아침 몸으로 놀 수 있는 공놀이나 딸이 제일 좋아하는 줄넘기를 함께 할 수 있도록 체력을 기를 것이다. 더 튼튼하고 존재감있는 아빠의 모습으로 파이팅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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