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가족상담 후기] 어른의 모습인 어린아이가 만나 서로를 보듬다
어른의 모습인 어린아이가 만나 서로를 보듬다
2023 서울가족학교 우수후기 공모전 / 최우수상 / 가족상담 (중랑구센터/이지혜)
저희 부부는 운명처럼 유럽여행에서 만나 7년 넘게 장기 연애를 했고 헤어짐 없이 결혼까지 아름답게 결실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보니 연애 때에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날 선 말투, 생각과 행동들의 차이로 다투는 일이 많아졌고 급기야 정말 하고 싶지 않았던 아이 앞에서의 다툼까지 이어졌습니다. 저희 부부는 서로 많이 속상했고 어찌할 바를 몰라 혼란스러웠습니다. 무엇보다 아이가 느꼈을 공포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커서 그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양가 부모님이 모두 바쁘셔서 외로움을 많이 느끼고 자랐고 갈등과 다툼이 많은 역기능 가정 안에서 자랐기에 우리 아이에게는 그런 가정을 물려주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는데 마음처럼 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문제점을 찾고 개선하기 위해 상담을 다니고 있던 상황에서 중랑구가족센터에서 하는 ‘부부집단상담-감사의 온도’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부집단상담은 토요일 4주간 진행되는 프로그램으로 이론 전달과 실습의 형태로 진행되었습니다. 특히나 저희처럼 아직 아이가 어려서 참여하기 힘든 부부들을 위해 따로 옆에 놀이방까지 만들어서 돌봄서비스도 해주셔서 편하게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상담프로그램은 ‘이마고 대화법’에 기초해 부부가 대화할 때 갈등을 줄이고 상대방의 말을 온전히 들어주고 이해하며 공감해주기를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강사님은 ‘부부간의 대화 안에서 동일한 갈등 문제가 3회 이상 반복되면 그것은 과거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다’라는 핵심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듣자마자 지금 저희 부부에게 너무 필요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저희 부모님은 많이 다투셨고 저는 그럴 때마다 마치 전쟁터 한복판에 서 있는 군인과 같은 마음으로 그 상황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적어도 나로 인해 화가 나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학교에서나 사회생활에서도 모범생으로 자라왔습니다.
그러나 30대가 되고 결혼을 하고 보니 뒤늦은 사춘기가 온 건지 내가 요구하지 않고 참아왔던 것들을 각성하고 그 상처로 인해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그런 상처투성이 둘이 만나 대화를 할 때는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기 일쑤였습니다. 이전에는 다툼이 일어나면 대화가 도돌이표의 연속이라는 생각에 힘들었는데 이번의 배움을 통해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기존에는 저희가 다툼이 생겼을 때 상대방이 공격적인 말을 하면 이를 방어하기 위해 내가 그렇게 말한 이유, 행동한 이유를 생각하고 있었고 언제든 반격할 준비 자세로 대화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기존의 대화 방식이 얼마나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본인 위주로 진행되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첫 시간에는 보내는 사람, 받는 사람을 정해 보내는 사람은 “나” 언어를 사용해 “나는 당신이 ~해줘서 감사해”라는 감사한 내용을 말해보고 받는 사람은 “당신은 내가 ~해줘서 감사하다고 생각하는구나”라며 보내는 사람의 말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저희 부부에게 가장 필요한 ‘경청’을 습득하기 쉽게 풀어놓은 내용 같았습니다. 배운 대로 배우자와 손을 잡고 눈을 바라보며 실습하는 시간이 되었는데 실제로 해보니 삐걱삐걱 대화가 잘되지 않았습니다. 강사님이 참고로 보여주신 시청각 자료 중, 하나는 이미 본 적이 있었던 것이라 알고는 있었는데 실제로 적용해 보니 이론을 안다고 해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구나를 깨달았습니다.
실습을 해보니 우리가 얼마나 배우자의 말을 온전히 듣지 못하고 자신의 이야기만 하고 있었는지를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강사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내 생각의 스위치는 끄고 온전히 신랑의 말을 그대로 듣고 반영하기를 해보기 위해 어린아이 걸음마 배우듯 천천히 진행했습니다. 두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큰 깨달음을 얻은 첫 번째 수업이 끝났습니다. 이 중요한 원리를 모르고 있었구나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아니 유튜브, 블로그 등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이미 한 번쯤은 들어봤던 내용이었지만 실제로 적용해보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수업이 끝난 후 점심에 감자탕을 먹으면서 제가 “여기 맛집이래요. 맛있죠?”라고 묻자 신랑은 “나는 감자탕 맛은 다 똑같은 것 같아.”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다른 곳 갈 걸 그랬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신랑은 “오늘 반영하기 배웠잖아요. 왜 그대로 안해요?(웃음) 나는 감자탕은 가게마다 맛이 비슷하다고 했지, 맛없다 먹기싫다고 한게 아닌데...”라고 말을 했습니다. 아차! 그냥 맛이 비슷하다는 거지, 별로구나 괜히 여기로 왔나 다른 곳으로 데려갈 걸 그랬나 라는 것까지 순식간에 생각이 미친 상황을 보며 평소에도 지레짐작으로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고 이야기 했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날 우리 부부는 4세인 우리 아이처럼 말을 처음 배운다는 자세로 새로운 대화방법을 익혀보자 의지를 다졌습니다.
두 번째 시간에는 이전에 배웠던 ‘감사대화’를 주제로 복습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삐걱삐걱 어색하던 대화가 일주일 간의 연습 때문이었는지 조금은 자연스러워짐을 느꼈습니다.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며 감사했던 점을 얘기하고 반영해보니 신랑이 어떤 것에 감동을 받는지 알 수 있어서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그 후 ‘갈등 주제’를 가지고 ‘나는 ~한 상황에 ~감정과 ~생각이 든다’는 골격으로 대화를 나누어봤습니다. 강사님은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비방하려고 하지 말고 온전히 나에 집중해서 이야기해보라고 가이드를 주셨습니다. “나는 준비할 때 당신이 빨리하라고 재촉하면 불안하고 왜 나만 힘들게 준비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솔직하게 말해보았습니다. 신랑은 “아~ 당신은 준비할 때 내가 재촉하면 불안하고 왜 나만 힘들게 준비해야하나 라고 생각하는구나.”라고 반영하기를 했습니다. 오! 신랑이 그냥 그대로 듣고 반영하기만 해줬는데 내 얘기가 바로 전달된 것 같고 속상했던 부분이 좀 해소되는 것 같았습니다. 이전 같았으면 간다고 했으면서 왜 준비도 안 되어 있냐, 재촉하는 게 아니라 간다고 말해놓고 바로 안 나가니깐 하는 말 아니냐는 대답이 돌아왔을 텐데 말입니다.
세 번째, 네 번째 시간에는 나의 부모님의 긍정적인 특성과 부정적인 특성을 적어보고 부정적인 특성 중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좌절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았습니다. 이렇게 찬찬히 순서대로 진행해보니 내가 부모님에게 이런 특성 때문에 상처를 받았는데 내가 똑같은 모습으로 배우자를 대하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부모님의 양육 특성을 적은 것을 바탕으로 좌절대화를 실습하는 시간에 “나는 어릴 때 ~한 상황에서 무서웠어요.”라는 말에 신랑은 “어린 OO이는 ~한 상황에서 무서웠겠구나. 무서웠구나.”라고 그대로 반영하기를 했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어린 시절의 저를 깊게 위로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냥 반영하기만 해주었는데 참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충족되지 못한 좌절된 욕구를 배우자에게 기대합니다. 그리고 대화할 때 나의 좌절된 욕구는 끊임없이 요구하면서 상대방이 말하는 순간에는 상대방의 창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내 편의 창으로만 바라보며 대화를 합니다. 이것이 저희 부부가 끊임없이 도돌이표 대화를 하게 된 이유였습니다.
우리 부부는 이제 상처받은 과거를 끊어낼 것입니다. 더 정확히는 아이 앞에서 다정하게 대화하며 아이에게 집이 전쟁터가 아닌 따뜻한 보금자리가 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편안하고 행복한 말이 가득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상태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어색하고 부족함 투성이지만 서로를 보듬어주려 합니다. 이제야 올바른 첫 단추를 끼웠고 천천히 해보려고 합니다. 이렇게 필요한 시기에 양질의 프로그램을 알게 되고 배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한 가지 더 바람이 있다면 심화 과정으로 좀 더 배워보고 싶습니다.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할 때 매 시간마다 실습 후 다른 부부들의 실습 후기를 들어볼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데 깨달은 것 중 하나가 ‘우리 부부가 이상한게 아니구나! 다른 부부들도 비슷한 생각과 문제들로 갈등하고 있었구나!’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다른 부부들의 이야기를 통해 공감과 위안이 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부부들에게 필수적이고 필요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앞으로 자라날 수많은 아이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다정스레 이야기하고 같이 웃고 울어줄 수 있는 가정이 있다는 것만큼 아이에게 좋은 환경은 없을 테니깐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