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가족학교 후기] 나와 너 그리고 우리를 깊이 알아본 시간
나와 너 그리고 우리를 깊이 알아본 시간
2023 서울가족사업 우수후기 공모전 / 장려상 / 예비·신혼부부교실 (강북구센터/장태기)
예비부부교실은 결혼할 사람만 듣는 거 아닌가요?
눈앞에 놓인 과업만 집중하다 보니 여유를 잊고 지냈다. 그러다 한 사람이 내 마음을 비집고 들어왔다. 작은 재능을 타인에게 나눌 줄 아는 마음, ‘봉사활동’이란 이름으로 함께 인연을 이어갔다. 시간이 흐르며 타인의 손을 잡던 두 손은 서로 맞잡게 됐다. 함께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처음 연애를 시작할 때만 해도, 결혼을 생각하면서 연애하진 않는다. 서로 다른 색이 조화를 이루며 물 들어가듯, 함께 하는 시간이 깊어질수록 결혼이라는 미래를 그려지고 싶은 마음도 피어났다. 주변에서는 시간과 마음의 깊이는 비례한다고들 말했다. 신중히 서로를 알아가면서 결혼이란 미래를 그려보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만남의 시간만큼 중요한 건 ‘농도’를 짙게 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둘 다 배우는 걸 즐기는 편이라 ‘가족됨연습’ 온라인 과정을 함께 수강했다. 가족이 된다는 건 무엇일지 함께 공부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강북구 가족센터에서 진행하는 ‘예비부부교실’ 프로그램을 알게 됐다.
예비부부교실. 이름만 들으면 예비부부로 확정된 사람만 듣는 교육처럼 느껴졌다. 내 생각은 앞으로 미래 부부로 그림을 그려갈 사람으로서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예비부부교실’이지 않을까 싶었다. 내 생각에 동의해준 파트너와 함께 예비부부교실 수업을 듣게 됐다. 가족센터를 통해 신청한 뒤, 친절하게 1:1 오픈채팅으로 프로그램 안내부터 시작해 프로그램 점심으로 제공할 메뉴는 무엇이 있고 어떤 메뉴를 고를지 등 친절한 소개에 아직 교육에 참여하지도 않았지만, 벌써 부터 설렜다.
한 가지 걱정되는 건, 우리와 달리 이미 결혼식 날짜를 잡아둔 부부가 듣는 교육이지 않을까 싶었다. 이런 걱정이 무색하리만큼 가족센터 담당자분은 사사로운 질문에 대해서도 친절한 답변을 주셨다. 아직 교육을 듣지도 않았는데, 함께 교육 듣는 파트너와 결혼하게 된다면? 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교육 날을 고대했다.
서로를봄 1 : 행동유형검사와 건강한 대화 방법
3월 18일 토요일, 아침 9시 30분에 파트너와 만나 강북구 가족센터로 향했다. 직원분들의 친절한 환호를 받으며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토요일 아침이지만, 모두 해맑은 얼굴로 함께 할 분들을 보니 절로 에너지를 얻은 것 같았다.
‘서로를 봄’ 예비부부교실 프로그램은 총 4가지로 구성됐다. 첫 번째, DISC 행동 유형 검사, 두 번째, 건강한 대화 방법, 세 번째, 결혼을 위한 체크리스트, 마지막 네 번째, 인생 곡선 그리기로 진행된다. 이번 강의를 맡아준 전보영 강사님은 우리 커플과 구면이었다. 이전 가족센터에서 진행한 심리 교육을 들었을 때 인상 깊었다. 심리 교육은 비대면이었는데, 직접 대면으로 강사님을 뵈니 반가웠다.
마침 강사님도 우리를 알아보고 눈인사를 보냈다. 그렇게 강사님의 열정이 담긴 강의와 서로를 알아보는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가장 먼저 시작됐던 건, DISC 성격유형 검사였다. DISC 검사는 행동 패턴을 주도형(D)과 사교형(I), 안정형(S), 신중형(C)로 간략화해 성격을 분석한다. 나는 사교형(I)가 나왔고, 파트너는 안정형(S)가 나왔다. I와 잘 지내기 위해선 관심을 자주 표현하고, 칭찬하고, 계획을 세우도록 도와줘야 한다에 동의했다. 파트너는 S로 본인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동의했다.
DISC로 서로를 규정할 순 없지만, ‘스타일을 조절하고, 관용과 감사를 해야 한다’는 말이 인상 깊게 남았다. 마치 MBTI와 같은 요소로 상대방을 판단할 수 없는 것처럼, 서로 DISC도 어느 정도 예측은 됐어도,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자고 얘기를 나눴던 기억이 났다.
점심시간 때, 사전에 주문해 둔 김밥을 받았다. 담당자는 점심시간이라 음악을 틀어주려 PC 유튜브로 접속했다. 마침 짜파게티 광고가 나왔다. 나와 파트너는 눈을 마주치자 바로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컵라면을 먹기 위해서다. 컵라면에 물을 붓고, 면이 익을 때까지 기다리면서 서로 통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행복하게 웃었고,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게 김밥과 컵라면으로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이후 진행된 대화법 강의에서도 ‘나-전달법’에 대해 익히는 시간을 가졌다. 나-전달법에서는 평가와 생각, 수단/방법, 강요와 구별해야 함을 강조했다. 실제 내 마음이 어떤지 주목하는 게 필요했다. 상대방이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는 점이 아닌 나의 감정은 어떻다는 점을 전달한다면, 상대방도 충분히 수긍하고, 바뀌려 노력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3시간 30분 동안 프로그램은 진행됐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끝난 뒤, 서로 못한 이야기나 추가로 논의할 내용은 카페에 가서 편하게 얘기를 나눴다. 예비부부교실 수업을 처음 들었던 인상은 부부 관계보다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어울려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과 나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떠올리게 해줬다. 프로그램에서 배운 소소한 감사를 나누는 과제도 우리 커플은 틈틈이 하면서 지금도 서로를 향한 감사를 나누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서로를봄 2 : 체크리스트, 인생곡선 그리기, 그리고 서로에게 보내는 편지
3월 25일 토요일, 예비부부교실 2번째 시간이면서 마지막 시간이다. 토요일 아침 앉아서 교육 듣는 게 힘들기도 했지만 벌써 끝이라는 생각에 아쉬움도 남았다. 또한, 이번 시간에는 어떤 점들을 알려줄지 궁금해서 기대됐다.
“행복한 결혼생활의 시작은 자신의 ‘성숙함’과 ‘건강성’에서부터 시작된다.”
이것이 이번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점이다. 결혼은 서로 다른 둘이 모여 하나가 되는 과정이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 성숙(부모 등 외부적 환경으로부터 독립)과 건강(외적인 것뿐만 아니라 내적인 부분까지)한지 살펴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각각 외부 환경으로부터 독립된 정도를 나타내는 점수 표기부터, 결혼한 뒤, 이해할 취미 3가지(운동, 봉사활동, 글쓰기) 등 얘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예비부부교실은 그동안 서로 생각만 하고 있던 것을, 허심탄회하게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 좋았다. 그동안 서로 알고 있던 것 같았지만, 자세히 물어보지 않아 몰랐던 점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파트너가 만두를 좋아하는데, 김치만두를 좋아하는지 고기만두를 좋아하는지까지는 몰랐다. 그냥 만두를 가져다주면 좋아하겠지? 생각했다. 물론, 만두를 산 것만으로도 고마워하고, 좋아할 수 있다. 그런데, 고기만두를 좋아하는 파트너를 생각하는 배려는 서로의 믿음을 키워줄 것이다.
마지막 시간은 재무에 대한 교육이었다. 돈에 대한 서로의 철학(나는 자립, 자신의 삶을 독립적으로 유지 경제적 자립을 추구하는 것 – 파트너 : 즐거움, 자신, 타인에게 돈을 쓰면서 기쁨을 얻는 것)을 공유하는 것부터, 집안일을 분장할 때, 어떻게 설정하면 좋을지까지 현재 누군가의 소중한 남편이자 엄마인 강사님의 현실적 꿀팁까지 좋았다.
프로그램 마지막 증서 수여식 전, 사전 과제로 서로에게 쓰는 편지를 작성해와야 했다. 우리는 미리 지난주 토요일 카페에서 써뒀다. 강사님은 한 커플을 직접 앞에 나와 편지를 낭독하면 좋겠다고 했다. 그때 우리 커플이 지목됐다. 예비부부교실 참여자 중, 가장 연애 기간이 짧은 커플이라 선택했다고 했다. 모든 편지 내용을 적을 순 없지만, 일부 구절이 떠올랐다. “자기와 함께한 시간 덕분에, 태풍처럼 느껴졌던 시련이란 시간도 지나고 나니 태풍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을 함께 하는 당신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등이었다.
우리 편지 내용을 듣고 훌쩍이는 다른 커플도 있었다. 우리 편지 내용을 읽으며 지금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떠올랐을 것이다. 예비부부교실은 나를 더 이해하고, 파트너와 한층 농도가 짙어진 시간이었다. 당장 결혼을 결심하지 않았을지라도, 서로에 대해 깊은 이해 하고 싶다면 이러한 교육으로 서로를 알아가면 좋겠다. 서로를 보는 시간 속에서 나에 대한 이해와 나를 돌보고, 무엇보다 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음을 깨닫게 해준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