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가족담쟁이 “힘내라, 워킹맘!!” 이야기 공모 당선작 - <가족의 사랑을 먹고 사는 초보 워킹맘 이야기>
행복가족담쟁이 “힘내라, 워킹맘!!” 이야기 공모 당선작입니다. ^^ 제목 - 가족의 사랑을 먹고 사는 초보 워킹맘 이야기 작성자 - 김현주 Good morning~ Good morning ~~~ 오전 7시, 이제 그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야 함을 알리는 경쾌한 알람송이 방안에 울려 퍼지면 습관처럼 부스스 몸을 일으킵니다. 두 어깨에 얹혀진 책임감이 ‘5분만 더’하는 잔꾀는 더 이상 부리지 않게 하니까요. 아직 단잠에 빠져있는 두 아이들, 촉촉한 그 얼굴을 따뜻한 손길로 한번 쓸어주고 나면 이제 본격적인 바쁜 하루가 시작되지요. 시원한 물 한 잔에 몸 속 노폐물을 내려 보낸 뒤 세수를 하고 화장을 하고, 남편과 아이들을 위한 아침상을 준비합니다. 국 한 그릇에 나물반찬 두어가지, 과일 조금 뿐인 소소한 상차림이지만 남편과 아이들 빈 속으로 세상 밖에 내보내지 않음에 여자로서 작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지요. 그때쯤 일어난 남편이 아침식사를 하고, 그 동안 아이들 옷가지와 가방을 챙기면서 저 역시 새 옷으로 단장합니다. 틈틈이 식사하는 남편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특히 외근이 잦은 남편 때문에 그날의 날씨는 부부의 아침 대화에서 거의 빠지지 않는 단골 이야깃거리가 되지요. 그렇게 분주하게 출근준비를 하는 남편의 넓은 어깨와 멀쩡한 두 다리가 새삼 고맙게 느껴지는 데는 남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2년 전 2008년 1월,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불법유턴을 시도하던 차량이 무방비 상태로 걷고 있던 남편을 뒤에서 치고 지나간 억울하기만 한 사고였지요. 5분이면 도착하니 구수한 된장찌개를 끓여달라던 남편이 말이지요. 그 뒤로 고통스러워하는 남편을 홀로 수술실로 들여보낸 것이 정확히 여섯 번이었는지, 일곱 번이었는지.. 무릎의 관절, 연골 파열은 물론 한쪽 다리의 뼈들이 거의 조각나서 결국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골반에서 뼈를 이식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골수염이 생겨 재수술을 하는 등 약 2년에 걸친 참으로 힘들고 힘든 과정들이었습니다. 넉넉하지 못했던 형편이었기에 세 살, 다섯 살 두 어린 것을 데리고 시댁에 들어가 생활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결혼 후 그때까지 잘 몰랐던 고부간의 갈등도 경험했습니다. 약해진 의지력을 틈 타 슬며시 우울증이 생기기 시작했고, 밤마다 이불 속에서 훌쩍이는 어미의 약한 모습을 봐서인지 명랑했던 큰 아이가 어느 날 부쩍 위축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그만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지요. 그날 받은 충격이 다시금 생각을 고쳐먹는 계기가 되었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꽁꽁 감춰두었던 힘든 속내도 털어놓고, 그러다 보니 어깨를 짓누르던 힘듦이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여지고 더불어 잃었던 활력을 되찾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돌아보면.. 도덕 교과서에서나 봐왔던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은 정말 괜한 말이 아닌가 봅니다. 환한 아침햇살 받으며 거실 한 켠에서 양말을 신고 있는 남편의 모습, 굳이 자세히 보려 하지 않아도 한쪽 다리에 낙인처럼 길게 나 있는 수술자국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행히도 이렇게 멀쩡히 다시 걸을 수는 있게 되었지만, 비가 올 것 같은 궂은 날이면 어김없이 수술한 자국들을 되짚어가며 인상을 찌푸리는 남편입니다. 병원 측이야 할 수 있는 외과적인 치료를 다 했다지만 아직 불편함이 남아있는 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금의 새 직장 평사원으로 자리를 잡기까지.. 그 힘들었던 긴 시간 다 이겨내고 이렇게 듬직한 모습으로 출근준비를 하는 오늘의 남편 모습이, 이 평범함이 저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렇게 조금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남편을 먼저 출근시키고 나면, 이제 행복하면서도 가장 힘든 시간 어린이집 다니는 두 아이를 깨워야 할 시간이 다가오지요. 먼저 잠들어 있는 큰 아이 곁으로 다가가 ‘태림아~’하고 나지막이 이름을 불러보지만 늘 그렇듯 바로 깨는 법이 없습니다. 상기된 두 볼에 엉킨 머리카락을 귀 뒤쪽으로 쓸어주면서 몇 번 더 이름을 불러주면 그제야 슬쩍 눈을 뜨지만 이내 다시 감아버리지요. 옛말에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지요? 두 아이 키우면서 사랑스런 눈길로 바라본 일 수없이 많지만 아이의 곤히 잠들어 있는 얼굴은.. 어미로서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느끼게 하는 것 같습니다. 올해부터 동생과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게 된 큰 아이는, 원래는 다니던 유치원이 따로 있었지요. 전업주부였던 제가 갑자기 일을 시작하게 되고 보니 다니던 유치원과는 여러 가지 여건이 맞지 않아 결국 어린이집으로 옮기게 된 것입니다. 조금 내성적인 아이라 어디든 첫 적응이 어려워 애를 먹곤 했었는데, 유난히 다정다감하셨던 그 곳 선생님을 만나 정을 참 많이도 붙였나 봅니다. 엄마가 왜 일을 시작해야 하는 지, 왜 유치원을 옮겨야 하는지에 대해 말해 주었을 때 처음엔 알아듣는가 싶더니 결국은 닭똥 같은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우리 유치원이 불쌍해.. 우리 선생님도 불쌍해..” 그렇게 한참을 울면서 아이 식의 헤어지기 싫은 마음을 표현해 보이는데 그 애틋한 마음이 그대로 느껴져서 제가 다 눈물이 날 정도였지요. 새 어린이집으로 등원하던 첫 날, 겉으론 웃고 있었지만 머릿속으론 떨어지지 않겠다고 울면 어떻게 해야 하나 불안한 마음뿐이었어요. 그런데 이 착한 녀석이 어느새 제 마음을 다 읽고 있었는지, 어색하게 손 한번 흔들어주고는 나오려는 울음을 꾹 참느라 조그만 입술을 앙다문 채 아주 담담하게 새 선생님을 따라 계단을 올라갑니다. 그 작은 뒷모습을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면서 아이가 대견스러웠다기 보다는.. 애처로운 마음을 떨칠 수가 없어서 돌아서서도 한동안 가슴이 아팠던 기억이 지금도 나네요. 잠시 큰 아이의 긴 속눈썹과 약간 벌어진 작은 입술에 눈길을 주다 이불을 한쪽으로 걷어내고 흐트러진 다리를 모아 쭉쭉 주무르듯 마사지를 합니다. 그렇게 살짝만 건드려주면 아이는 신기하게도 온 몸에 힘을 주어 큰 기지개를 펴고 자연스레 잠에서 깨어나지요. 아직 잠이 덜 깬 눈을 이리저리 비벼가며 혼자 화장실로 걸어 가는 아이의 작은 어깨가 문득 안쓰럽게 느껴지는 건 어린 마음에 그런 이별의 과정을 다 겪어내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이렇게 탈 없이 잘 적응하고 있는 데 대한 고마움과 또 미안한 마음이 큰 탓이겠지요. 그렇게 비교적 수월하게 큰 아이를 깨워 세수를 시켜놓고 나면, 이제 다섯 살 응석받이 둘째를 깨우는 일이 또 남아 있습니다. 사내아이라 기분파인 요 녀석은 조금 더 살갑게 대해주어야 기분 좋게 일어나지요. 저도 몸이 힘들게 느껴지는 날이 분명 있지만 이때만큼은 일단 제 컨디션은 제쳐두어야 탈이 없습니다. “잘 잤어, 도훈아?” 가볍게 아침인사를 한 뒤 얼른 가져다 놓은 윗옷을 갈아 입히지요. 벌써 다섯 살이라 옷 정도는 스스로 갈아입을 수 있지만 바쁜 아침시간을 조금이나마 단축시키고, 입혀주면서 아이와 장난끼 섞인 스킨십을 하며 웃음을 줄 수 있기에 그렇게 제 손으로 입혀주곤 합니다. 아직 잠이 안 깬 척 두 눈을 꼭 감고 있는 개구진 녀석을 그대로 안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가 목에 타월을 두르고 뽀득뽀득 세수를 시켜줍니다. 그럼, 그제야 살짝 눈을 뜨고 만족의 미소를 보여주지요. 고런 때 보면 참 예쁜 둘째 녀석인데, 그 다섯 살 개구쟁이와 며칠 전 크게 부딪힌 일이 있었답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갖은 애를 써가며 기분 좋게 아이를 깨우고 세수를 시키려는데, 유난히 짜증을 내고 우는 소리를 해 슬며시 화가 날 참이었습니다. 아침상을 차려주고 바쁘게 큰 아이 머리를 매만지며 힐끗 돌아보니, 이 녀석이 입만 삐죽 내밀고는 숟가락조차 들 생각을 않는 거였지요. 속이 타 들어갔습니다. 지금 먹지 않으면 시간이 없다고 겨우 부드러운 말로 경고했지만 요지부동이었지요. 그 사이 큰 아이는 밥을 다 먹고 저 역시 모든 출근 준비를 마친 뒤, 이제 나갈 시간임을 알리자 이 녀석이 이제는 또 제쳐둔 아침밥을 먹겠다고 우는 소리를 합니다. 화가 치미는 걸 간신히 누른 뒤, 그럼 나갈 시간이니 얼른 먹으라고 했지요. 그런데 또 입만 쭉 내밀고는 그대로 얼음, 잠시 시계바늘을 쳐다보다 안되겠다 싶어 겉옷을 입히려니 역시나 안 입겠다고 눈물바람입니다. ‘현명한 엄마’는 아무리 화가 나도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걸 알지만, 결국 제 큰 손으로 아이의 등을 철썩 내려치고 말았지요. 난리가 나서 우는 녀석을 그대로 내버려둔 채 큰 아이만 데리고 현관으로 나서니 이 녀석이 울며 달려나옵니다. 말없이 겉옷을 입히고, 가방을 메 주고, 운동화를 신겨 밖으로 나와 보니.. 마치 그때의 제 마음을 대변하는 듯 세찬 비가 내리고 있었지요. 힘겹게 우산을 펴서 몇 발자국이나 걸었을까, 둘째 녀석이 잡은 제 손을 뿌리치며 “어린이집 안 갈꺼야!” 합니다. 몇 번 더 물어도 입을 꾹 다문 채 가지 않겠답니다. “딱 셋만 셀 꺼야. 엄마는 회사를 가야 하고, 너는 어린이집에 가야 해. 셋을 센 뒤에도 가지 않겠다면 엄마는 너를 두고 그냥 갈 수밖에 없어!” “……” “하나, 둘, 셋!!!” 이 녀석, 그래도 꿈쩍을 안 합니다. 훽 큰 아이만 데리고 대문 밖을 나서니 작은 녀석이 울며 난리를 칩니다. ‘이쯤 되면 이제는 잘못했다고 안기겠지? 못이기는 척 달래주자.’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돌아가 눈물이 그렁한 아이 손을 잡으니, 웬걸 그 잡으려는 손을 또 한번 훽 뿌리칩니다. 들고 있던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니, 바로 가도 벌써 5분은 지각입니다. 정말 화가 났지만 아이에게 다시 한번 상황을 설명하고 빨리 갈 것을 권유하자 몇 발자국 뒤 현관 벽에 몸을 기댄 채 꿈쩍도 안 합니다. 불안한 얼굴로 곁에 서서 그 상황을 지켜보던 큰 아이만 데리고 또 그대로 빗속을 걸어 나오면서 얼마나 속상하던지.. 이제 고작 다섯 살, 아직 어린 아들의 마음을 헤아려 가며 여유를 갖고 풀어주지 못한 채 시계를 들여다보며 채근하고 소리치고, 또 그렇게 화를 내며 돌아 나오는 모든 상황이 너무나 속상하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골목 끝까지 걸어 나와 말없이 곁에 선 큰 아이를 바라보니, “엄마.. 동생도 데려가야지..” 곧 눈물이 날 것 같은 촉촉한 눈망울로 물어 옵니다. “태림아, 니가 데려올래?...” 힘없이 물으니, 그래도 누나라고 기다렸다는 듯 총총 빗속을 달려갑니다. 저만치 달려간 아이가 대문 앞에서 뭐라고 뭐라고 제 동생에게 말을 건네는 것 같더니, 역시나 말을 듣지 않는 지 곤란한 표정으로 이 편의 저를 돌아다봅니다. 힘없이 되돌아가 대문 틈 사이로 안쪽을 바라보니, 골이 단단히 난 얼굴로 그대로 현관 벽에 기대고 서 있는 작은 아이의 얼굴이 보입니다. 아무래도 좀 전에 한차례 손을 댄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천천히 다가가 아침의 일에 대해서 다시 얘기하고, 아이의 잘못과 또 화를 참지 못하고 손을 댄 제 잘못에 대한 사과도 했지만 쉽게 마음을 풀지 않았지요. 어떻게든 말로써 아이를 설득시켜 잘못을 깨닫게 하고 상한 마음을 풀어주고 싶었지만, 시간은 이미 정해진 출근시간을 넘긴 지 오래였습니다. 그대로 잠시 내리는 비를 바라보다, 앞에 섰는 아이를 한 팔에 안아 들고 한쪽 팔엔 우산을 든 채 힘겹게 일어섰습니다. 안 가겠다고 잠시 버둥대던 아이도 지쳤는지 고개를 파묻고 품에 안깁니다.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었습니다. 따라 걸어오는 노란 우산 속 큰 아이 얼굴도 온통 울상입니다. 그렇게 어렵게 원에 도착해 아이들에게 잘 가란 인사를 했지만, 큰 아이도 작은 아이도 슬쩍 한번 돌아보고는 그대로 들어가 버립니다. 그렇게 상한 마음으로 30분 이상을 지각하며 겨우 회사에 도착해 그날 일을 어떻게 마쳤는지, 저녁이 되어 아이들을 데리러 가는 길 그 잠깐 동안도 내내 마음이 울렁거렸습니다. 원에 도착해 아이들이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저만치서 콩콩콩콩 분주한 발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큰 아이가 반갑게 달려듭니다. 뒤이어 작은 아이도 달려 나오다 제 모습을 발견하고는 얼른 뛰던 걸음을 멈추고 다시 퉁퉁 부은 얼굴로 표정을 바꿉니다. “도훈아, 엄마한테 인사 안 해줄 꺼야?..” 물어도 말이 없습니다. 한숨을 쉬며 돌아 나오려는 찰나 “내 손 잡아줘야지~!” 얼굴은 그대로 퉁퉁 부어서는 살짝 손을 앞으로 내미는데, 그 작은 고사리 손을 잡는 제 마음이 봄눈 녹듯 살살 녹아 내렸습니다. “도훈이는 오늘 어땠어? 엄마는 누나랑 훈이 생각에 회사에서도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몰라~” 봇물 터지 듯 아이들을 향해 조잘조잘 무거웠던 마음을 표현해 보이니 두 아이 얼굴도 꽃처럼 활짝 펴집니다. 그렇게 어느 날은 큰 녀석, 어느 날은 작은 녀석이 번갈아 가며 힘든 상황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금새 이렇게 마음을 들뜨게 하고 행복하게 하고, 살아가는 희망과 용기를 낼 수 있게 하는 존재 또한 우리 아이들인 것 같습니다. ‘5살은 괴로워’ 라는 동화책이 있습니다. 다섯 살 둘째가 요즘 즐겨보는 동화책이지요. 책 보자, 하면 꼭 그것만 가져와서 겉 표지의 제목을 한 글자 한 글자 짚어가며 ‘다섯, 살은, 괴로워’ 이렇게 또박또박 읽는 걸 보면, 이 녀석이 벌써 사춘기는 아닐 테고 한 2춘기 정도는 찾아왔나 싶기도 합니다. 대체로 제 할 일을 스스로 하려는 큰 아이와는 달리, 세수라도 혼자 시킬라치면 물장난하느라 세월 가는 줄 모르는 작은 녀석이니 당분간은 힘들어도 그렇게 살살 달래가며 해야 일이 좀 되지 싶습니다. 세수한 뒤 깨끗해진 동그란 두 얼굴에 베이비로션을 듬뿍 발라주고, 미리 준비해놓은 아침상을 얼른 내놓지요. 아이들이 밥을 먹는 동안에 큰아이 곁에 앉아 머리를 매만져줍니다. 아기 때 유난히 머리 숱이 없어서 돌 전후까지도 가끔 남자아이냐고 물어와 속상했었는데, 그 머슴애 같던 녀석이 벌써 이렇게 긴 생머리를 찰랑이는 숙녀로 거듭났으니 딸아이 머리 하나 만져주면서도 세월이 참 쏜살같음을 느낍니다. 시간이 없다는 건 핑계고 손재주가 별로 없어 그저 양쪽으로 묶어주거나 땋아주는 게 전부지만, 그렇게 딸아이 머리를 만져주는 잠깐의 시간도 엄마로서 여자로서 행복합니다. 간소한 아침식사가 끝나면 저도 아이들도 겉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옵니다. 한 쪽엔 고사리 같은 손, 한 쪽엔 단풍잎 같은 보드라운 작은 손을 양 쪽에 하나씩 잡고, 집과는 3분 거리에 있는 어린이집을 향해 씩씩하게 걸어나오면 그게 그렇게 가슴이 벅차고 충만한 마음일 수 없답니다. 파지를 줍느라 일찍부터 나와계신 앞집 할머니께도 반갑게 인사 드리고, 매일 아침 만나는 한아름슈퍼 큰 강아지한테도 아는 척 손 흔들어 줍니다. 물론, 아직은 어린 두 아이들이라 아침에 일어나지 않겠다고 떼를 쓰며 우는 날도 있고, 갑자기 큰 볼일을 보겠다고 변기 위에서 한참을 앉아 있는 통에 시계바늘만 쳐다보며 속이 타 들어갔던 적도 있었지만.. 그건 그저 잠깐일 뿐, 돌아보면 참 기특하고 대견한 아이들입니다. 어린이집에 도착해서 인사할 때도 우리 셋은 조금 유별납니다. 아이들 이름이 씌어진 신발장에 제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한 뒤 큰 목소리로 서로를 향해, 엄마 안녕~ 회사 잘 다녀오세요! 그래 그래~ 태림아, 도훈아 안녕~ 계단 조심해~ 사랑해, 엄마, 사랑해요~ 머리 위에 하트를 만들고 손을 흔들어 가며 서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아쉬워서 난리지요. 출근하는 엄마를 향한 아이들의 그 씩씩한 목소리와 동그란 얼굴만으로도 어떤 날은 울컥 눈물이 날 뻔한 적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건 유별난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이가 원에 들어서는 걸 확인하자마자 바로 돌아서 가버리는 엄마들에게야 그 모습이 유별나 보이겠지만, 그렇게 요란하게 인사하고도 돌아서면 바로 보고 싶어지는 아이들 얼굴인데 어떻게 그걸 유별나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회사를 향해 출근하는 저의 하루는.. 그래서 오뚝이처럼 씩씩하고, 어려움 앞에서도 힘을 낼 수 있고,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스려가며 환하게 웃을 수 있습니다. 결혼 후 8년 동안은 직장생활을 한 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아기가 바로 들어서기도 했고, 여유 있진 않았지만 남편이 가져다 주는 월급을 쪼개 쪼개서 살림하는 재미도 있었기 때문이지요. 몇 해가 지나 제 일이 가지고 싶다고 마음먹을 즈음, 운명처럼 둘째를 가졌습니다. 그렇게 그 생활에 익숙해져 버리자 이번에는 제 일을 갖는 것에 두려운 마음이 생겼고, 어느 샌가 자신감도 사라져 버렸지요. 가진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니었고 스타 블로거처럼 집안살림을 특출하게 잘 한 것도 아닌, 그냥 익숙한 것만 찾다 보니 그게 편해진 일상들이었습니다. 그러다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하고, 회복에 오랜 시간이 걸리면서 당장 두 아이 교육비 마련이 어려워지는 등 내 생활이 바닥까지 내려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지요. 그때부터 아침에 눈 뜨자마자 골목으로 나가 벼룩시장을 훑어보고 밥만 먹으면 컴퓨터 앞에 앉아 일자리 사이트를 검색했습니다. 하지만, 평범하기 그지없는 오래된 커리어를 가진 서른 중반의 아줌마에게 맞는 일자리를 찾기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을 돌볼 최소한의 시간까지 염두에 두면서 신중하게 선택한 덕분인지, 떨리는 첫 면접에서 감사하게도 합격 통보를 받았고 지금의 이 직장에 출근하게 된 것이지요. 첫 출근하던 날, 전날부터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아침에 알람시계가 울리기도 전에 번쩍 하고 저절로 눈이 떠졌습니다. 정신 없이 준비를 하고 어린이집 앞에서 아이들과 힘차게 화이팅도 한번 외친 뒤 종종걸음으로 회사에 도착했지만 문이 굳게 잠겨 있습니다. 시계를 들여다보니 8시 20분, 출근시간 9시까지는 아직도 40분이나 남았습니다. 참 알만합니다. 8년 만에 갖는 직장 첫 출근에 감도 많이 잃었고 긴 공백만큼이나 자신감도 간데없으니 마음만 앞섰던 결과였지요. 40분 짧지 않은 시간이면 회사 옆 편의점에서 잠시 앉아 있을 법도 한데 무슨 마음인지 문 앞을 떠날 수가 없었어요. 그냥 멍하니 서 있다가 화장실에 들러 매무새를 새로 단장하고, 5층 복도에 난 창문 밖으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과 지나는 차들을 무심히 내려다보다, 또 복도에 떨어져 있는 신문 헤드라인을 뒤적이다.. 그렇게 얼마를 기다렸을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 제게 아는 척을 합니다. 작은 키에 마른 몸, 앳된 얼굴을 가진 멋쟁이 아가씨가 제 앞에 서 있었지요. 한눈에 봐도 저보단 한참 어린 사람인데 뭐가 그리 어려운지, “저, 오늘부터 새로 나오게 된..” 주눅이 잔뜩 들어서는 목소리조차 마음처럼 씩씩하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그 앳된 숙녀분 앞으로 제가 일을 배우게 될 바로 위 사수셨지요. 나이는 저보다 한참 아래지만 얼마나 야무지고 똑 부러지는 지.. 처음엔 그 똑 부러지는 분명함에 주눅들고 부담을 느껴 차마 누구에게 말도 못한 채 의기소침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동그란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며칠간 참아내다 보니 오히려 그 부분이 현장감을 빨리 익히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효율적인 책상 정리와 비품관리, 품의서식 등 작은 부분 하나도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그게 반복이 되면서 나중에는 저만의 방식을 고안하는 등 재미가 붙기 시작했어요. 가만 보면, 8년간 살림을 꾸려온 아줌마 노하우가 절대 부끄럽거나 쓸데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맡은 업무에 빛을 발할 수 있게 돕는 부분이 분명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과 남편을 챙기는 것과 동시에 저도 같이 출근준비를 해야 했기에 처음 얼마간은 허둥대기 일쑤였는데 그런 속사정을 헤아리신 시어머님께서 도우미를 자처하시고 아침마다 집으로 출근을 해주시니, 겉으론 “내일부터는 안 그러셔도 돼요. 아침마다 어머님 힘드시게..” 했지만 내심 얼마나 감사했는지요. 아이들 챙겨 어린이집 보내는 것도 맡아 주시고 저녁에 퇴근해 돌아와보면 빨래며 아침 먹은 설거지며, 하물며 냉장고 반찬까지 깔끔하게 정리된 모습에 죄송하고 부끄러우면서도 한편 내 편이 있단 생각에 너무 든든했고 거기서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일하는 곳이 화장품 회사라 가끔 어머님께 작은 박스를 전해 드릴 때가 있어요. 일하는 중에 제 몫으로 조금씩 얻을 수 있는 화장품 샘플들을 모아두었다가 그렇게 정리해서 전해 드리지요. 갖가지 박스들을 버리지 않고 한 켠에 모은 것 중에 제일 모양이 예쁜 것으로 골라 ‘아이크림’, ‘에센스’, ‘영양크림’, 등등 견출지에다 어머님 보시기 쉽게 큰 글씨로 이름을 써 붙이고, 그 옆에 사용순서 스티커를 붙여 가지런히 정리해 넣어드리면.. 그렇게 꾸며 봐야 고작 샘플임에도, “애미야~ 너 때문에 내가 화장품 살 돈이 안 들어간다. 내가 아주 고~맙게 잘 쓰마.” 몇 번을 말씀하시니 오히려 드리는 마음이 더 감사하고 열심히 일해서 이번에는 꼭 좋은 것으로 정품을 사드려야겠다 힘을 내게 하고 오기를 갖게 합니다. 그렇게 가족들의 사랑과 아줌마 뒷심으로 여러 가지 힘든 상황들을 잘 넘겨오긴 했지만, 아무리 강한 아줌마 파워라도 무너지고 약해질 때가 분명 있습니다. 작은 녀석이 열감기에 걸려 체온이 40도 가까이 올라 엄마를 찾는데도 그대로 두고 나와야 했을 때, 협력업체들과 일하다 보면 어느 때는 자존심이 저 밑바닥을 내려치는 느낌을 받기도 하지만 억지로 참아내야 할 때 등등, 대범하지 못한 성격 탓도 있겠지만 세상 일이란 참 만만치 않음을 매번 느낍니다. 그래도 그렇게 힘에 부친 상황이 시시각각 닥쳐왔을 때 제 상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주면서, 어느 때는 책 잡힐까 사장님 귀에 들어가지 않게끔 덮어주려 애쓰는 회사 동료들이 곁에 계시니.. 이런 저런 많은 사람들이 공존하는 사회생활에서 이렇게 마음 맞는 좋은 분들 곁에 새 직장을 갖게 해주신 어떤 큰 힘에 대해 감사한 마음입니다. 참 떨렸고, 두려웠고, 그리고 너무나 피곤했습니다. 회사에서 너무 긴장하고 있었던 탓인지 퇴근해 저녁을 먹고 아이들을 챙기고 나면 그렇게 힘에 부치고 졸려서 어떤 날은 세수조차 못하고 그대로 잠들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제가 맡은 일의 흐름이 조금씩 보이고, 함께 일하는 분들과 자연스레 농담도 건넬 만큼 편안해지자 그렇게 피곤하기만 했던 저녁시간에 간단하게 남편과 맥주도 한잔씩 하는 여유가 생겼답니다. 정신 없는 아침을 맞이하고 밤 늦게까지 바삐 움직이는 바람에 좋아하던 드라마 한편 느긋하게 볼 여유가 없어졌지만, 어린이집에 제일 꼴찌로 남아 있으면서도 불평하지 않고 밝은 얼굴로 엄마를 맞이하는 착한 내 아이들이 있고, 일하는 중간에 잠깐 들러 집을 싹 청소해 놓고 회사로 돌아가는 우렁각시 같은 남편이 있으니 힘든 가운데서도 전에 잘 몰랐던 삶의 활력을 느낄 수 있답니다. 혹시, 일하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저처럼 너무 오래 일을 쉬어서 고민하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일단 주저하지 말고 뛰어들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물론 지금 처한 상황과 적성 등을 잘 고려해야 하고 아이들이 있는 경우 할애되는 시간이 줄어드는 건 사실이지만,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준다고 꼭 양질의 교육을 하는 건 아니니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음으로써 삶의 활력을 찾고, 그 에너지로 가족들을 대한다면 분명히 거기서 오는 상승효과도 아주 크다는 걸 말하고 싶어요. 워킹맘.. 그 전문적이고 화려할 것 같은 대열에 들어선 지 겨우 1년 남짓 된 초보라 그런지, 수수한 차림새만큼이나 남들처럼 쉽게 넘어가지 못해 부딪히고 상처받는 부분이 많이 있지만 그렇게 끈끈하게 뭉쳐진 사랑하는 가족이 있으니 뿌리 깊은 그 사랑에서 힘을 얻어 마침내 지금의 어려움을 잘 극복해내리라 틈날 때마다 꿋꿋하게 다짐하곤 합니다. 며칠 전 아침, 사고 후 남편이 1년 이상을 끌어오던 의료소송에서 억울하지만 결국은 져서 상대편의 소송비까지 전액 부담해야 한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그것 때문에 그렇게 며칠 동안 얼굴이 어두웠던 거야? 우리 둘 다 젊고, 일도 하고 있는데 뭘 그렇게 죽을 상이야? 까짓 거 열심히 일해서 갚아버리면 되지! 안 그래? 딴 생각 말고 애들 봐서라도 힘내~” 이렇게 별 것 아닌 듯 남편을 보내놓고는, 돌아서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출근해서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친한 언니에게 전화 해 불안한 속내를 털어놓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 지는 것 같았지요. 그날 점심시간 즈음 언니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너 좋아하는 달달한 커피 사 들고 회사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이거 마시고 툭툭 털어버리라고.. 따뜻한 봄볕아래 언니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홀짝인 그 커피 한잔에 정말 거짓말처럼 일어설 힘이 났습니다. 남편에게 말 못할 얘기까지 이렇게 스스럼없이 나눌 수 있는 마음 편한 지인도 가졌으니 살아가면서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렇게 저라는 사람과 이런 저럼 모양으로 엮어진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비록 부족하긴 하나 이 시대 워킹맘의 한 사람으로서 당당하고 열정적으로 살아갈 것을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공개선언하면서 부족한 제 이야기를 마칩니다~ “우리 똥강아지들~~~” “엄마, 우리가 왜 강아지야?” “글쎄.. 엄마가 너희들을 왜 그렇게 부르는 걸까?” “알아! 우리들을 너무 너무 사랑하니까..” 맞아, 내 아가들아.. 너무너무 사랑해.. 엄마 출근시간 맞추려 일찍부터 곤히 잠든 우리 강아지들을 깨워야 할 때도, 어린이집 신발장에 남아 있는 신발이라곤 우리 강아지들 것 밖에 없는 걸 본 날도, 모처럼 쉬는 날, 밀린 집안 일에 심심해하는 강아지들이랑 제대로 눈 맞추지 못 할 때도, 매일매일 너무 사랑하고, 또 자꾸자꾸 미안해.. 내일은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행복하자~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