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가족담쟁이 “힘내라, 워킹맘!!” 이야기 공모 당선작 - <우리엄마는 워킹맘>

작성일 : 2010.10.01

행복가족담쟁이 “힘내라, 워킹맘!!” 이야기 공모 당선작입니다. ^^ 제목 - 우리엄마는 워킹맘 작성자 - 이아람 오늘 나는 가장 자랑스러운 워킹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바로 우리 엄마. 나의 엄마입니다. 내가 10살되던해, 딸 셋을 가진 우리엄마는 아빠사업이 어려워지자 가끔씩 낮에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철부지 막내딸인 나는 그저 엄마의 잔소리를 피할 수 있는 오후시간이 너무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마치 나에게 주어진 달콤한 자유시간을 즐기듯이..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나를 앉혀놓고 이제 엄마가 매일 일하러 나가게 되었는데, 우리 막내딸 학교 갔다 오면 혼자 있어야하는데 괜찮겠냐고 물어보셨죠. 아무것도 몰랐지만 엄마가 돈을 벌어서 내 이쁜 옷도 사주고 책도 실컷 사준다하기에 마냥 괜찮아요 했던 것 같네요. 그렇게 우리엄마는 워킹맘의 길을 그 무렵부터 걷기 시작했습니다. 엄마가 없어 자유롭게 느껴지던 날들도 잠시. 어느 날 부터인지 엄마의 빈자리가 아직 어린 나에겐 너무나 크게 느껴졌습니다. 비 오는 날 교문 밖에서 우산 들고 친구들을 기다리는 엄마들. 친구 집에 놀러 가면 간식을 만들어주고 숙제를 돌보아주던 엄마들. 등하교길, 학교 앞 신호등에서 안전 지도하는 친구들의 엄마들. 친구들에겐 아주 평범한 일상들이 내겐 꿈만 같고 마냥 부러워서 철부지 막내딸은 엄마 회사 이제 그만 가라고 참이나 많이 울어댔지요. 우리엄마는 그때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마음이 얼마나 많이 아팠을까요? 그렇게 어리기만 했던 딸이 중학교를 들어갈 무렵, 일하고 지쳐서 돌아오는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나는 조그마한 집안일부터 스스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교 후 친구들이 놀자는 것도 뿌리치고 집으로 와서 청소며 설거지며 깨끗하게 해 놓고 미숫가루도 태워서 시원하게 냉장고에 넣어놓았다가 엄마에게 짠하고 선물하곤 했죠. 그럴 때마다 엄마는 ‘우리 딸 너무너무 착하고 기특하다’하며 환히 웃으셨죠. 새벽에 깨어나 아침밥을 지을 엄마의 아침을 기쁘게 해주는 작은 이벤트, ‘엄마 사랑해요.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를 종이에 이쁘게 적어서 하트모양으로 냉장고에 붙여놓기도 했습니다. 그럼 엄마는 막내딸의 귀여운 짓에 늘 답장을 써서 책상위에 용돈과 함께 올려놓곤 하셨습니다. 어린마음에도 엄마는 너무나 대단한 사람 같았습니다. 새벽마다 언니들과 나의 도시락 5개를 싸는 걸로 아침을 시작했던 엄마. 하루 종일 일하고 지쳐 돌아와도 가족들의 저녁을 소홀히 하지 않았던 엄마. 어떤 작은 것이든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늘 되뇌이던 엄마.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들이 지겨울 법도 한데, 한번도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내가는 엄마가 철이 들 무렵부터 자랑스럽고 또 미안했습니다. 고백컨대 때론 그런 엄마가 부담스러웠던 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족들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삶도 중요한건데, 오로지 자식이 잘 되기만을 바라는 그 간절함 때문에 답답하기도 했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참 배부른 소리이고 행복에 겨운 투정이었네요. 그런 엄마가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건데, 스스로 컸다고 생각한 자식들의 오만함이 때론 엄마를 얼마나 외롭게 만들었을까요? 그렇게 엄마의 워킹맘 인생은 20년을 달려왔습니다. 누구하나 속 썩이지 않고 엄마의 바람대로 바르게 커준 딸 셋. 그리고 든든한 사위도 셋. 꼬물꼬물 귀여운 손자손녀도 셋. 네 가족이 한 집에 모이면 북적북적.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작년 가을. 엄마의 환갑을 기념해서 온 가족이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가을들녘 산과 들에 핀 꽃들을 바라보며 소녀같이 활짝 웃던 엄마의 얼굴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시골의 한밤중. 가족들이 잠들고 엄마와 나는 별을 보기 위해서 발코니에 나왔습니다. 쏟아질 것 같이 하늘에 수없이 뿌려진 별들, 가을 밤바람, 그리고 내 옆에 서 있는 엄마는 한 폭의 그림 같았습니다. 그 어떤 그림보다 감동적이고 값을 따질 수 없는. 이젠 세 아리는 것조차 의미 없어진 엄마 얼굴의 주름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엄마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족의 살아있는 역사가 엄마의 얼굴 속에 모두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엄마의 얼굴은 참 곱습니다. 이제 좀 쉴 만도 한데, 마음 편히 집에 있어도 되는데 엄마는 그래도 일을 하신답니다. 우리에게 부담주기 싫은 것도 이유이고 평생 일해서 집에 있는 것도 답답해서. 그게 이유랍니다. 나 살기 바빠서 못난 딸은 엄마를 극구 말리지 못했습니다. 우리가족들 다 열심히 지금처럼만 살면 참 평온하고 행복하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작은언니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할말이 있다고 집으로 오랍니다. 순간 어떤 직감 같은걸 느꼈지만 설마 싶었습니다. 언니의 입에서 ‘엄마가 조금 아파’ 란 말을 들었을 때, 그때의 내 마음은 지금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담담하게 암이야? 라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입니다. 다행히 1기랍니다. 정말 너무나 다행입니다. 내가 지금 임신 중이라서 모든 검사와 진행과정을 끝내놓고 이야기 하는 거랍니다. 그날부터 이틀을 얼마나 울었던지요. 뱃속아기에게 미안한줄 알면서도 그렇게 엉엉 울었습니다. 불쌍한 우리엄마. 이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생각해도 하늘은 너무 무심한거라고. 왜 하필 착하고 열심히만 살아온 엄마의 노후에 선물은 못 줄망정 이런 시련을 주는 거냐고. 하지만 내가 울고 있은들, 그 어떤 득도 없고 엄마에게 도움이 되지 못할 거란 생각에 며칠 뒤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엄마가 서울로 수술하러 간 날. 배부른 막내딸은 따라가지도 못하고 그저 엄마수술이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어렸을 적, 신경이 예민해서 잘 놀래고 자주 아팠던 나 때문에 잠도 못자고 꼬박 밤을 새워서 내 옆에서 몸을 닦아주고 자장가를 불러주던 엄마. 그런 엄마가 아픈데 난 엄마한테 받은 사랑만큼 보답할 수가 없어서 너무나 마음이 아팠던 날이었습니다. 그래도 엄마는 그런 막내딸의 마음을 헤아리고 수술실에 들어가셨겠지요. 그렇게 엄마의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나고 몇 달이 흐른 지금, 엄마는 항암 치료 중에 계십니다. 힘들어하시지만 그래도 꿋꿋이 이겨내는 엄마가 너무나 대견합니다. ‘너희가 있어서 엄마가 너무 힘나고 행복해, 빨리 이겨내고 우리 딸이 아기 낳으면 엄마가 업어줘야지’ ‘엄마는 아픈데 뭐 그런 생각을 해. 어서 몸 추스려서 건강해질 생각을 해야지’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엄마가 이런 씩씩한 생각을 한다는 게 너무 고마울 뿐입니다. 얼마 전 집에 갔더니 항암치료 부작용으로 모자를 쓰고 있던 엄마는 ‘우리 딸 왔으니 모자 벗어야지. 가족 앞이나 벗지. 아유 더워’하고 모자를 벗어서 민머리를 보여주십니다. ‘우리엄마 머리가 빡빡머리 아기 같네’ 하고 웃으면서 맘속으로는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저 독한 약이 우리엄마의 머리카락을 한웅 큼도 남겨놓지 않고 빼앗아가다니, 마음이 짠해서 엄마의 얼굴을 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곤 집으로 돌아와서 엄마에게 어울릴만한 모자를 바로 사서 보냈습니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핑크색으로 말이죠. 아직 치료가 조금 남았지만 생각보다 건강하고 씩씩한 엄마여서 끝까지 잘 이겨내리라 믿습니다. 일년 후 즈음엔 뱃속에 우리 아가가 외할머니에게 안길 상상을 해봅니다. 그 어떤 선물보다 내게는 최고의 선물이 되겠지요. 평생을 워킹맘으로 살아온 나의 엄마. 그 속에서 행복을 찾았고 꿈과 목표가 있었던 엄마의 인생. 내겐 최고의 워킹맘입니다. 나도 워킹맘으로 살아갈 텐데, 뱃속의 우리 아가도 지금의 나처럼 엄마를 자랑스러워하면 좋을텐데. 그건 나의 남겨진 숙제이고 몫이겠지요. 나의 엄마가 그랬듯이 우리 아이에게만큼은 최고의 워킹맘, 존경받는 엄마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보렵니다. 그리고 엄마 많이 사랑하고 고맙습니다. 당신은 우리 딸 셋의 최고의 영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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