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가족담쟁이 “힘내라, 워킹맘!!” 이야기 공모 당선작 - <나는 힘센 복숭아같은 행복한 워킹맘>

작성일 : 2010.10.01

행복가족담쟁이 “힘내라, 워킹맘!!” 이야기 공모 당선작입니다. ^^ 제목 - 나는 힘센 복숭아같은 행복한 워킹맘 작성자 - 김정옥 우리딸 동이가 마악 태어났을 무렵이 바로 월드컵이 치뤄지던 2002년 무렵이었습니다. 임신막달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당장 출산해야한다고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셔서 내심 너무 큰 걱정을 했답니다. 첫아이 낳던 경험이 너무 커서인지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큰 아이를 낳을때는 15시간의 산고 끝에 어렵게 아이를 나았거든요. 그런데 우리딸 동이는 너무 똑똑하게 길을 잘 찾았는지 어느새 30분도 채 안되어서 아이를 낳았네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서 병원에서 다들 난리가 났어요. 제가 입원했던 병실에서 다들 아이를 낳던 경험담에 오랜 진통 얘기에 꽃을 피우는데 나는 30분만에 낳았으니 할말이 별로 없었어요. 그렇게 엄마를 안심시키고 고통없이 나온 아이가 바로 우리 이쁜딸 동이랍니다^^ 그런데 아이낳고 불행인지 저는 몸이 아팠고, 너무 문제가 되면서 어느새 휠체어에 앉아야하는 정도로 심한 장애를 입게 되었습니다. 그 절망감은 이루말할수 없었지만 우리 딸아이 덕분에 제가 살아야할 의욕을 찾게 된것 같아요. 우리 딸아이는 눈치가 얼마나 빠른지 엄마가 발이 아픈것 같으면 물찜질도 해주고 또 엄마 설겆이도 고사리손으로 도우면서, 늘 엄마에게 힘을 주는 똑똑한 아이랍니다. 엄마 기분을 살피면서 유쾌한 웃음으로 엄마를 즐겁게 해주려고 애쓰는 우리딸 벌써 철다든 똑똑한 아이 같아요. 너무 이쁘고 사랑스런 우리동이를 위해서라도 더 씩씩하게 건강하게 살아야할것 같아요. 언제나 밝고 유쾌하고 활발한 우리 동이는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고 귀여운 아이랍니다^^ 10년간의 오랜 어두웠던 절망을 딛고 나는 아이의 해맑은 사랑속에서 일하는 엄마로서 의지를 다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더는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고 이를 악문 나는 이제 워킹맘입니다. 아름다웠던 나의 청춘, 눈부신 행복, 나의 젊음은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나의 꿈은 참으로 충만해있었던 젊음이었다. 꿈이 너무 많아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던 인생, 그 아름답던 인생속에서 나는 젊음을 무기로 무엇이든 할수 있을것 같았다. 에니메이션도 배워보고 칼라믹스 공예에 관심을 가져보기도 했다. 한때 만화가를 꿈꾸던 나는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면서 나의 꿈을 스케치하듯 구체화시켜 나가기 시작했다. 가난했던 어린시절에 대한 아쉬움에 더 많은 돈과 부를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에 시작한 젊은 시절의 노점 인생은 나에게 만만치 않은 도전과 시련을 안겨주고 있었다. 나는 그런 모든 삶의 파노라마속에 나에게 온 아름다운 인생속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서른 한살이 넘은 나이 나는 나의 인생에 대해 고민했고 그 고민을 함께 나눌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서 결혼했다. 나의 인생은 장미빛처럼 찬란했었다. 나는 어느새 아름다운 오월의 신부가되어 있었다. 은색링반지하나와 작은 은시계가 우리들 폐물의 전부였지만 17년된 낡은 아파트안에서 시작한 우리들의 신혼은 이세상 어떤 푸르지한 행복보다 빛났으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후루지아 향기를 키워올리고 있었다. 내 인생과 바꿀수없는 나를 닮은 세상에 하나뿐인 나의 꼬물꼬물한 유전자들이 태어나서 화수분처럼 잘 자라고 있었다. 너무도 성실한 남편, 사랑하는 두 아이들~ 꼬물꼬물 엮어가는 삶에 대한 행복한 단상들, 내 인생속으로 다가온 모든 봄들이 그렇게 아름다울수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큰 행복이란것이 이렇게 평범한 일상속에서 찾게 된다는것을 태어나서 처음 경험해보는 순간이었다. 매일매일 눈뜨는 순간,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만큼 내 스스로에게 만족한 일상이 시작되고 있었다. 하얀 웨딩드레스, 그사이로 들어난 봉긋한 생의 향기와 첫출발에 대한 기대로 빛나는 불타는 입술, 나의 결혼 사진속의 얼굴은 너무도 해맑고 예쁘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결혼을 하게 되면서 아이둘이 태어나면서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싶었다.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도 우리가족이 생활하기에 불편함이 없었지만 그보단 나의 일에 대해서 어떤 열정을 불어넣을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고. 그것은 결혼이란 행복이 가져다 주는것 이상 나의 삶에 존재의 가치를 더해준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혼후, 충분히 행복했음에도 나는 내 마음속에 열정을 잠재울수 없었고 아이둘이 태어났지만 아이들을 돌보면서 그사이 틈틈히 내가 원하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나는 내가 가장 잘할수있고 실증내지 않고 열정을 불태울수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생각했다. 물론 나는 여러가지 일들에 참 관심이 많았다. 세상에 여러가지 흥미를 끌수있는 일이 존재하듯 해보고 싶은일도 많았고, 나의 생각에 갈등을 불어넣을만큼 나를 즐겁게 하는 일들도 많았다. 하지만 이세상에서 하고 싶은 모든일들을 다 해보기엔 시간이란 제한이 있었고, 나는 내 인생속에서 주어진 시간속에서 내가 가장 잘하고 오랜시간해도 질리지 않을 일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평생 열정을 불태울수있는 일이 무얼까? 그림에도 소질이 있었지만 그림을 그리게 되면 언제나 조금시간이 흐르면 실증이 나고 하기 싫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글을 쓰는 일은 달랐다. 나는 글을 쓸때만은 어떤 희열을 느낄수있게 되었고, 글을 쓰게 되면서 내안에서 펼쳐지는 수많은 생각과 이야기들은 나의 생활에 탄력을 주었고, 자꾸 나의 손을 끄적여서라도 습작을 할수있는 열정을 쏟아붓게 도와주었다. 자꾸 나에게 글을 쓰면서 찾아오는 희열을 알게 되어가면서 나는 그간 내게 흥미를 끌던 모든 일들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내가 가장 잘 할수있는 일이 바로 글을 쓰는 일이란 것을 알게되었다. 하지만 고등학교의 학력이 전부였던 나는 글쓰기에 대한 어떤 지도와 교육을 받을수 없었기에 내 감각과 촉감에 의지할수밖에 없는 실정이어서 꾸준한 습작과 독서만이 유일한 내 글쓰기 실력을 높일수있는 기회가 되었다. 예상외로 나의 글쓰기는 나의 생활에 리듬과 안단테의 삶을 제공해주었다. 경제적으로도 명예적으로도 윤택한 삶을 살게되었고, 또한 내 열정속에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되면서 나는 펜을 잡았다. 열심히 습작한 결과 어느날 나는 신인작가 등단이란 큰 성과를 가지고 내가 나아갈수 있는 삶의 활로를 열어갈수있었다. 아이둘이 하루가 다르게 커가면서 나의 희열과 보람도 늘어만갔다. 하지만 너무 행복했기 때문이었을까? 내 삶에 어느날 찾아온 운명같은 삶은 나의 삶을 송두리채 앗아가 버렸다. 둘째 딸아이를 낳고 찾아온 열병같은 병,그것은 내 인생의 한계를 체험하는 인생의 무대였다. 어느날 갑자기 어지러워 쓰러진 나는 어느새 몸이 망신챙이가 되어있었다. 한쪽 다리의 근위축증과 함께 뇌손상으로 인한 시야결손 엄청난 장애가 나에게 찾아온 것이다. 너무도 갑작스럽게 벌어진 삶의 위기앞에 나는 잠시 번개맞은 사람처럼 먹먹해졌다. 뭘 어찌해야 하는지, 어떻게 인생의 숙제를 풀어가야 하는지 나는 아무런 것도 알지 못한채 지금부터 시작된 삶의 전쟁속에서 치열하게 싸울준비를 하고 있었다. 꼬물꼬물하게 자라던 두 아이를 돌볼 힘이 없어서 시부모님께 위임하고 나는 다시 내 질병을 치유하기위해서 병원을 전전하던 시간이었다. 병의 근원을 찾아 끊임없이 여행하던 나는 어느샌가 내게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행복을 발견하게 되었다. 하루하루 삶을 조여오는 불안감과 무너진 경제, 아이들을 내 스스로 키워 낼수없다는 모성에 대한 죄의식으로 나는 싸워야했다. 거기에 건강하던 나에게 찾아온 장애를 나는 용서할수 없었고 이해할수 없어서 너무 힘들었다. 받아들일 힘이 없을만큼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나는 한동안 내 삶의 갈길을 잃고 삶의 사막 한가운데 홀로 버려진것 같은 삶의 위기를 오롯히 내 스스로 끌어 안아야했다. 나의 삶은 모든것이 불가능하다 생각했고, 나는 그렇게 내 스스로 포기하고 능력을 정해놓고 방황하던 시간이었기에 내게 주어진 금쪽같은 시간조차 내앞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황망하게 흘러간 8년이란시간은 나의 방황이란 감옥속에서 굴절되어진 시간이었다. 죽음보다 강한 절망이 내앞에 놓여져서 아무리봐도 벗어날수없는 사면 초가의 상태가 되어간 현실을 그저 넋놓고 세월에 돗단배를 흘려보내듯 흘려보내는것 이외엔 내스스로 할수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매일매일 병원에 다니는것도 지쳤고, 걷기힘든 다리를 끌고 지내는 삶도 지쳐, 바닥에서 일어날 힘조차 없어서 모든것을 놓아버린 어느날 "너 글을 그렇게 잘쓰던데, 그렇게 아까운 삶을 포기하지 말고 한번 글쓰기를 해봐라" 그럼 아픈 너의 현실도 잊어버리고, 힘든시간도 잊고 그러면서 성장하는 것이지" 어머니의 충고도 내 귀에 들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이젠 할수없다고 믿었 기에 스스로 한계를 정해놓고 포기해버린 순간이었다. 모든것이 허사가 되었고, 늦었다고 생각했다. 희귀난치성 불치병으로 오랜동안 장애에 갖혀지내면서 나의 시야와 한계도 그만큼 좁혀들고 있음을 알지못했다. 그렇지만 나는 이제야말로 더이상 나의 인생을 이렇게 허비해선 안되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고 힘이 약해 근육이 주저앉은 발에 덧버선을 여러개 신고, 발을 끌다싶이 다시 인터넷을 잡았다. 내 발과 시야, 뇌의 기능은 문제가 되었지만 아직 남아있는 머리와 손은 건강하지 않은가! 나는 건강한 나의 필요 부분만 보기로 하면서 나는 끊임없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렇게 갇혀진 시야로 내다본 나의 생각이 무슨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교훈을 줄수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도전하는 인생이 아름답다는 말처럼 내게 찾아온 장애란 한계앞에 나는 도전하고 싶었다. 오랜 방황속에서 내가 깨닫은 지혜였다. 나의 힘겨움과 고통속에서 주변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풀던것을 글을 쓰는 희열로 대체하게 되면서 나는 잠시 파티를 하듯 내 스스로 찾아온 고통과 장애를 잊게 되었다. 글을 쓰면서 아직 나의 실력과 노동이 녹슬지 않았음을 다시한번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꾸준히 습작하면서 글을 쓴결과 나는 다시 공모전에서 당선하게 되었고, 그 당선은 나의 인생을 여는 활로가 되어주었다. 위축되어진 발을 끌어안고 목숨을 다해 쓰여진 나의 시가 책자에 실려 나온다고 했다. 어쩜 시를 쓰는 일이나 글을 쓰는 일은 지금의 나에게 한줄기 빛이었고 생명과도 같은것이었다. 나는 참 장애를 행운이라 생각한다. 삶의 귀로에서 내가 이렇게 심한 장애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자만 하고 거만한 인생을 살았을까? 그리고 지금처럼 목숨을 다해 나의 시를 쓸수없을것같았다. 절망의 순간을 이길수있게 하는 힘, 그것은 무언가에 몰입한 삶이었고, 그것이 글쓰기였다. 장애를 행복으로 바꿔준 글을 위력을 알게된 이후로 나는 어떤 삶의 투쟁 속에서도 글을 쓸수있을것 같은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아무도 할수 없을거라고 했다. 나의 인생은 무너졌다고 다른 사람들도 이야기했다. 나역시 지금의 내모습은 정말로 무너진 폐허의 현장 같았다. 휴지조각처럼 너덜대던 나의 건강, 하지만 그곳에서 피어난 인동초처럼 나는 다시 글의 밭을 뚜벅 뚜벅 일구고 있다. 다른사람이 하지 못한 일들을 내가 해내고 싶다. 다른사람이 경험하지 못한 세계속에서 길어올린 사람들이 보지 못한 행복과 희열을 나는 전하고 싶은것이다. 노력하는 인생이 아름답고, 행복한 인생이 될수있다는것, 아름다운 고통 속에서 피어난 꽃이 더 진한 향기를 피워올릴수 있는것처럼 장미가시 같은 아픔이 있었기에 나의 삶과 고통이 아름다운 인생속에 밝은 해후를 가져다줄것을 나는 확실히 믿는다. 정말 고통스러웠기에 목숨처럼 글을 썼고, 내 시는 나의 고통의 분신에서 쏘아올린 우주선이었다. 고통이 깊었기에 나는 시를 끌어안았고 단어를 갈고 닦는 노력끝에 전국 백일장에서 장원 당선이란 영예를 안을수 있었다. 쉽게 나의 인생길이 펼쳐지고,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고통속으로 삶이 밀어넣어지지 않았다면 나는 글을 내 경제적 수단으로 삼았을것이며 글이 나의 열정이 아닌 유희가 되었을지 모른다. 진심이 아닌 가식어린 글들, 남들이 보기에 아름답고 번지르한 글이 되어 전시회장 같은 글을 썼을것이다. 하지만 장애를 통해본 나의 경험과 세상 그곳에서 나아가는 나의 활주로 에서 펼쳐진 나의 글들은 다른사람이 보이지 않아도 내 마음의 거울속에 나를 담아낼수있는 투명한 것이면서 물처럼 나를 더 맑게 걸러내는 윤활유 같은것이다. 나의 치부와 고통까지도 드러내는 글, 나는 그래서 감히 장애를 좋은 글을 쓰기위한 시련이오, 또한 그 시련에 찾아든 행운이라 말하고 싶다. 목적으로 글을 쓰는것이 아니라 내 속에 각인되어진 행복을 다시금 채우는 글, 나를 더 빛나고 아름답게 하는 글들로 내 남은 인생을 채우리라. 내 육신은 신문지처럼 너덜되고 희미해져 가더라도, 정신만은 또렷히 살아 세상을 밝히는 아름다운 등불이 되고 싶다. 나는 어쩜 부족해서 많은것들을 담아낼수없는 빈항아리요, 쪼깨진 물새는 작은 항아리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안에서 느끼고 경험한 세계를 다른사람이 보지 못한 눈으로 풀어내고 싶은것이다. 수천명의 경쟁을 뚫고 나는 시백일장과,수필 동화백일장에서 당선되면서 나의 행복과 길이 여기에 있음을 나는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다시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일어서야 겠다고 다짐했다. 장애때문에 일할수 없다고 믿고 포기했던 순간, 나의 양심의 펜과 함께 시작한 인생속에서 나는 다시 무수한 행복과 가능성을 보게된 셈이다. 나의 삶은 스스로 부활시키기 시작했다. 글쓰기 공모전에서 입상을 하게 되면서 나의 일들은 더욱더 늘어만 갔다. 매일매일 올라오는 스토리공모전, 스토리텔링 동화, 칼럼, 시, 동화, 스놉스이야기 등 무수한 나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는 공모전을 하면서 나는 점점 더 나의 행복도 늘어갔다. 나는 내가 원하는 재능이 이곳에 있게됨을 알게되면서 좀더 많은 일들을 해보고 싶었다. 다양한 분야에서 글을 쓰고 싶었다. 비록 다리한쪽이 위축되고 시야결손과 뇌손상까지 움직일수 없는 힘든삶을 살고 있지만 아직 살아있는 나의 건강을 잘 활용하면서 나는 나의 일을 해가고 있다. 절망은 아무것도 할수없을 때 오는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내가 건강하지 않지만 꾸준히 무언가 열정을 쏟으면서 할수있는 일이 있다는것은 언제나 나를 살아있게 하고 살아있는 사람으로서의 행복을 가질수 있게 한다는 사실도 알게되었다. 꿈은 포기하지 않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신기루 같은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매진하는 사람은 장애란 한계속에서 방황하는 사람이 아니고 그 이상의 한계를 통해 내 자신의 삶을 새롭게 엮어가는 사람임을 나는 잘알고 있다. 건강할때는 알지못했던 장애인의 삶과 불편,그속에서 삶과 꿈을 쟁취해가는 과정을 보면서 사람이 참 위대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한계속에서 일어나는 힘, 어렵고 힘든상황 속에서 열정을 태울수 있는 힘 그것은 바로 나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내 자존심인 것이다. 경제적 여유를 떠나 나는 일을 하게 되면서 마음의 행복과 여유를 얻었다. 등단 작가로서의 명명을 높일수 있을만큼 나의 삶을 탄탄대로를 예고하고 있었지만 이미 찾아온 장애 앞에 아무런 것도 할수없다고 믿었던 나의 생각들은 착각이었다. 나의 삶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란 생각을 하면서, 아무리 어렵고 힘든 조건 속에서도 나의 능력과 양심,자존심의 힘으로 나는 꼭 이루어 보리라 믿고 또 다짐해본다. 아이들에게 떳떳한 엄마가 되기 위해서라도 워킹맘의 길을 가는 나는 가시밭길속 장미 한송이 놓아둔다. 나는 이제 더 깊은 바다로 나아갈 것이다. 더 크게 성공할 것이다. 삶이 발전되어갈수록 의료적 혜택과 시설도 발전 되어 이제 장애가 장애가 아닌 날들이 도래할것을 나는 믿는다. 누군가 장애를 장애라 하지 않았다. 언젠가 보장구의 발달과 의학혁명의 발달로 장애가 하나의 징표가 되는 시대는 더 멀어질 것이라 나는 믿는다. 조금더 시간이 흐르면 나는 위축되어진 한쪽 발을 절단해야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제 힘들어 하지 않는다. 보장기구를 하고 나는 다시 더 큰 세상속으로 나아갈것이다. 세상이 존재하면서 하나둘 미래가 현실이 되듯 나의 삶고 그렇게 나의 상처난 곳들을 메워나갈 의학이 나를 조금더 여유롭고 행복한 능력을 펼칠수있게 해주리라 믿는다. 깊은 성속의 오리온자리 별처럼 나는 다시 끈질긴 생명력으로 일어나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다시 독서를 시작한다. 수많은 글들에 대한 상상을 키워올리기 위해선 나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내 삶과 인생이 다하는 날까지 나는 나의 삶에 도전하고 나의 한계에 부딪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가진 위대한 능력, 그곳은 포기하지 않는 삶의 열정에 있다는것을 믿으면서 나는 지금 부족하지만 내 안에 가진 작은 능력안에서 더 크게 성장하는 나의 생장점들을 만나고 싶다. 아름다운 인생속에서 어려운 가시밭길 인생이라도 어려운 모험속에서 성공한 인생이 되기위해서, 어렵게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이 고단할지라도, 나의 숨이 멈출 즈음 돌아본 나의 인생길이 결코 쓸쓸한 놀이터가 되지 않도록 나는 나의 주어진 현실속에서 아름다운 바탕화면에 내가 가진 나만의 색깔을 채색하고 싶다. 나는 다시 인생이란 무대의 장막위에 선다. 나의 삶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번 백일장 장원입니다" 수천명의 경쟁자를 뚫은 나의 희열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당선 통보를 받은후 나는 한동안 멍해졌다. 수많은 건강한 사람들도 어렵다는 전국공모의 백일장을 내가 뚫은것을 보면서 나는 아직 나의 능력이 사장되지 않았음을 보면서 나는 다시 시작 하는 이일에 내 스스로 축하와 파티를 벌인다. 어려운 능선을 타고 아름답게 피어난 해국처럼 나는 오랜 고통속에서 진한 향기를 키워올린 행복한 인생의 주인공이 되고싶다. 아직 할수 없다고 미뤄두었던 삶, 그것은 내가 도전하지 않았기에 멈춘 시계태엽처럼 정지되어진 시간이었다. 워킹맘이 된 나는 다시 내 멈춰진 시계탑 속에 건전지를 넣고 다시 생명을 돌린다, 나의 멈춘 도전의 혈액이 힘차게 수혈받지 않아도 고통치고 있었다. 일하는 워킹맘 생의 절망끝에서 찾아온 한줄기 빛 그것은 정녕 희망이었다. 가시밭길속에 장미한송이 놓아본다. 나의 삶이 축제가 아닌 열망이 되고 도전이 되길 스스로 화이팅 해본다. 사랑하는 당신 이제 당신과 내가 만나 결혼이란것을 한지도 벌써 햇수로 십년이 되어 가네요. 그간 지내오면서 그 시간들이 내겐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기도 했고 말할수없는 고통의 시간이기도 했어요. 너무 착한 당신을 만나 난 아내로서 신부로서 그리고 아이들의 엄마로서 한집안의 며느리로서 열심히 살아야 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했지요. 흰 신부의 옷자락, 웨딩드레스를 입던 그날의 설레임처럼 늘 설레임과 행복을 간직하며 그렇게 살겠다구요. 그렇게 낡고 초라한 아파트에 신혼의 둥지를 틀었지만 사랑이 있었기에 세상 누구보다 달콤하고 행복한 신혼을 맞이했지요. 그곳에서 누구보다 건강한 우리둘의 보석 아이둘이 태어났고 난 어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가 되었답니다. 매일 아침 부지런히 일어나 당신의 아침밥을 챙기고 당신이 출근하는 뒷모습을 바라볼때의 행복감... 젖은 아기의 기저귀를 빨아널며 세상을 다 가진것 처럼 행복했던 순간들... 그 기억과 순간들도 잠시 난 갑자기 몸이 아파서 아무것도 할수없는 존재가 되어갔지요. 아이의 목욕조차 시킬수도 당신의 아침밥을 챙겨줄수도 없는 시간들.. . 눈사람처럼 아무것도 할수없는 나의 존재속에 아내는 없었습니다. 그런 시간들속에 점점 지쳐갈줄 알았던 당신은 몇년의 내 병과 방황속에서도 한결같은 모습이었지요. 언제나 나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으로 지켜온 가정 올해로 꼭 십년이 되어가네요. 이제 나만 건강하고 예쁜 예전의 아내로 돌아오면 되겠네요. 당신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말로 다할수없는 미암함과 사랑을 전합니다. 새해엔 더욱더 행복한 가정이 되길 우리 함께 노력해요. 당신을 사랑합니다. - 일하는 워킹맘 당신의 아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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