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봄 이용자 수기] 우리 아이 할머니는 셋!!! (송파구 이민 님)

작성일 : 2016.12.26

 아빠와 엄마보다 더 큰 사랑으로 키워주신 아이 돌보미 선생님, 선생님 할머니!

 이제 막 생후 29개월이 지난 이름이 민주인 저희 딸은 집에서는 그야말로 예민한 청개구리입니다. 그런 아이가 청명하고 아름다운 가을 하늘이 펼쳐지는 요즘, 엄마와 함께 근처 공원으로 산책하러 나가기만 하면 고사리손으로 낙엽과 도토리를 콕콕 집어 들고는 웃는 얼굴로 이렇게 얘길 합니다. 

"선생님 할머니 갖다 줄 거야"

 종알종알 말을 배워가는 어린 딸은 책을 보면서도, 장난감 놀이를 하면서도, 그리고 거의 모든 일상생활을 하면서 돌보미 선생님이신 '선생님 할머니'를 이야기합니다. 심지어 "엄마! 선생님 할머니랑 올림픽공원 가고 싶어"라고 하면서 스스로 돌보미 선생님과 함께할 계획까지 세웁니다. 

 이렇게 선생님 할머니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저희 딸이 표현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그 이유와 함께 제가 마음속에 담아 두고는 평소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감사의 마음을 용기 내서 전하려고 합니다. 

 저는 전문직에 종사하면서 나름 커리어 우먼(career woman)이라고 생각하며 결혼과 가족을 꾸리는 미래보다는 현재에 충실하며, 일과 자신을 위해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 결혼도 늦어졌고 첫 아이도 37살을 넘겨서야 낳게 되었습니다. 보기만 해도 이쁜 딸을 데리고 6개월 동안은 육아휴직과 휴가를 최대한 써 가며 육아와 씨름을 했습니다. 그런데 녹록지 않은 가정 형편인 데다 남편은 대학원에 다니며 학업을 마쳐야 했기 때문에 제가 어떻게든 서둘러 직장에 나가 돈을 벌어 와야 했습니다. 더는 휴가를 계속 쓰는 것도 직장에 눈치가 보였고 일을 그만두면서까지 경력을 단절시키는 것도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몸이 불편하고 아픈 사람들을 검사하는 직장에서의 제 일이 저에게는 큰 의미이자 보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어리기만 한 딸을 마음 놓고 맡길 곳이 없었습니다. 저와 남편의 양쪽 어머님들은 시골의 농사일로 도와줄 상황이 아니었고, 그래서 여기저기 알아본 사설 육아 돌봄서비스는 저희 형편으로 그 비용을 감당하기에는 큰 부담이기 때문에 말 그대로 좌절로 돌아왔습니다. 

 '그래도 혹시 나라에서 나와 같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뭐라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마지막 기대로 찾아 들어간 곳이 여성가족부 홈페이지였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아이 돌봄 지원사업이란 것을 알게 되었고, 제가 사는 지역의 담당 기관인 송파구 건강가정지원센터로 자세히 문의한 결과 우리 가족이 정부 지원을 받으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소식은 정말 가뭄에 단비처럼 다가왔습니다. 

 저는 2015년 3월부터 시간제 돌봄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무척 만족했기에 때문에 마음 놓고 조금 더 긴 시간을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종일제 서비스를 신청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제 선생님도 종일제 선생님으로 바뀌어야 했고 기존 선생님도 건강상의 이유로 저희와 계속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고 까다로운 어린아이인데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서 금방 적응할 수 있을지, 어떤 분이 민주의 좋은 선생이 되어 주실지, 이런저런 기대와 우려가 저희 부부에게 밀려왔습니다. 

 저희가 종일제 선생님으로 만난 분은 아이 돌보미에 선발되어 이제 막 교육을 마치시고 처음으로 아이 돌보미를 시작하시는, 시골에 계신 저의 어머니와 연배가 비슷하신 선생님이셨습니다. 저는 돌보미 선생님과 첫인사를 나눴던 그날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선생님의 온화한 인상과 따뜻함이 저는 물론 아이에게도 전해졌는지 낯선 사람만 보면 울음보를 터트리는 예민한 아이가 금세 환하게 웃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육아를 처음으로 시작하면서 똑똑한 아이로 잘 키우기 위해 한 번쯤 읽어야 한다는 외국 육아서적도 보고 사람들이 몰리는 인터넷 육아 관련 블로그와 카페를 찾아다녔습니다. 그곳에서 온통 서양식 육아 방법이 좋다는 정보를 접할 때마다 '왜 현실 속 육아는 이렇게 차이가 있을까'하는 생각과 함께 많은 혼란을 느꼈죠. 그러던 때 제가 눈을 돌려 조금씩 전통 육아에 관심을 두고 환희를 느꼈던 것은 돌보미 선생님 덕분입니다. 바로 돌보미 선생님이 그야말로 저희 어릴 때 어머니가 해주신 우리의 전통 육아법으로 민주를 키워주시는 게 아니겠어요? 그것도 마치 자신의 손녀에게 대하듯 웃는 눈으로 마주하며 '도리도리', '곤지곤지', '지암지암(잼잼)', '짝자쿵(작작궁)' 등의 놀이를 통해 예민하고 까다로운 아이와 소통하며 어느새 둘이 완전 찰떡궁합이 되어 있었죠. 

 또 선생님은 신세대 할머니 면모가 가득하셔서 민주랑 노래도 부르며 춤까지 같이 추며 놀아주시니 아이가 할머니와 있는 시간을 무척 기다리고 좋아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렇게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나의 아이만을 위해 좇는 그 어떤 정보보다는 소통하고 공감하며 함께 놀아주는 그 자체가 어린아이에게는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민주는 "선생님" 대신 서툰 말이지만 "할미~ 할미~"하면서도 돌보미 선생님을 잘 따릅니다. 그런 선생님과 아이를 보며 저희 부부는 그때부터 돌보미 선생님을 자연스럽게 '선생님 할머니'라 부르며 한 가족처럼 민주의 세 번째 할머니로 받아들였죠. 시골에 계신 양가(兩家) 할머니 그리고 선생님 할머니. 이렇게 민주에겐 친할머니와 같은 분이 한 분 더 더해져 셋이 되었답니다. 

 여느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과 달리 유난히 태어날 때부터 소리에도 민감하고 예민해서 늘 조심스러웠는데 선생님은 오히려 민주가 감수성이 풍부하고 영민하다며 밝고 건강하게 그리고 긍정적으로 키우자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선생님의 말씀이 친정엄마처럼 포근하게 느껴지더군요. 예쁜 둥이, 사랑 둥이, 똑순이 등등 선생님 할머니가 민주를 칭하는 애칭도 엄청 많습니다. 선생님 할머니와 소통이 잘되고 즐거우니 말도 빨라지고 배변 훈련한 지 얼마 안 돼 기저귀도 떼게 되었고요. 

 그리고 민주가 20개월쯤 되었을 때인가 한번은 선생님께서 민주가 노래 부르는 가수가 되고 싶어 한다며 저에게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저는 이때 평소 아이와 소통하며 꿈을 키워주시는 모습에 놀랐고 또한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민주가 판사도 되고 싶다고 얘길 했다며.... 하지만 사실 이건 선생님이 소망하는 아이의 미래였지요. 선생님 할머니와 떨어져 어린이집을 다니는 지금도 민주의 이 꿈들은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요즘은 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민주의 머리가 복잡한 것 같습니다. 

 선생님 할머니를 만나서 저는 민주의 동생을 낳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의 안정을 찾았고 육아의 기쁨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선생님 할머니 마음에 저희 부부는 늘 감사했습니다. 제가 다시 직장에 돌아가고 남편도 무사히 대학원을 졸업할 수 있었던 것도 아무 걱정 없이 자신의 분야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선생님이 함께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민주가 24개월을 넘겨 종일제 돌봄서비스 지원 혜택을 받지는 못하지만, 밝고 건강한 야무진 아이로 자라 어린이집을 잘 다니고 있습니다. 

 이제는 다른 아이의 '선생님 할머니'가 되셨지만, 저희는 종종 한가한 주말에 선생님과 만나고 있습니다. 저는 엄마를 만나듯, 민주는 할머니를 만나듯 말이죠. 한번은 식당 아주머니가 선생님 할머니와 민주가 노는 것을 보며, "할머니가 손녀를 너무 예뻐하시네요"라고 하셔서 저희는 함박웃음을 지었습니다. 맞아요. 남들이 보면 가족처럼 보이는 우리는 사랑과 기쁨이 넘치는 가족 같은 사이입니다. 저에게 좋은 인연을 맺게 해준 송파구 건강가정지원센터와 돌보미 선생님은 우리 가족에겐 정말 소중하고 감사한 존재들입니다. 

 가족보다 가까운 이웃사촌과 더 잘 지내는 요즘, 좋은 인연을 만나 큰 공동체를 이루며 우리 아이들을 기를 수 있다면 이것이 우리에게는 큰 행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동네가 필요하다는 말처럼 어려운 육아를 한 가정과 아이 돌보미 선생님이 만나 힘을 합쳐 소통과 공감의 돌봄으로 나눈다면, 우리의 아이들을 바르고 행복하게 기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는 우리 아이들을 무관심이 아닌 따뜻한 관심으로 돌봐야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온정 넘치는 어른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어른들이 깨닫고 사회적 책임으로 느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곧 우리의 미래니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희에게 선생님 할머니와 함께 더 큰 가족을 만들어 준 여성가족부의 아이 돌봄서비스가 경력 단절을 고민하면서 자기 일에 대한 보람 찾기를 포기하려고 하거나, 아니면 아이의 천재성을 위해 남들의 말과 정보들을 쫓고 자신의 의지로만 아이를 버겁게 키우며 자신감을 잃어가는 육아 맘들을 위해, 그 고충을 풀어주는 든든한 육아의 자부심으로 꾸준히 자라나길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도 만나는 아이마다 자신의 손주처럼 눈을 맞춰 소통하며 감성과 지성은 물론 공감하는 능력을 발견하고 키워 주시는, 또 다른 '선생님 할머니'분들께 힘찬 응원과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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