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우수후기 최우수 '엄마~ 나 오늘은 아빠랑 같이 잘래요'

엄마~ 나 오늘은 아빠랑 같이 잘래요

2018 부자유친프로젝트 우수 참여후기 최우수상 / 송파구센터 박재민


 

“엄마~ 나 오늘은 아빠랑 같이 잘래…….”

2018년 좀 쌀쌀한 11월 어느 날. 7살 딸 아이가 아빠랑 같이 자겠다고 베개를 들고 큰 방으로 건너왔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딸아이 방에서 항상 엄마랑 꼭 껴안고 잤는데 둘이 찹쌀떡처럼 붙어 있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끼어들 틈이 보이지 않아 서운하기도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7살 수연이 아빠 박재민입니다. 저는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국내 굴지의 스포츠 마케팅 회사에서 일했습니다. 스포츠 업종은 주말이면 바쁘고 평일에도 딱히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직종이 아닙니다. 항상 진행 중인 프로젝트만 끝내면 딸아이랑 이것저것도 하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매번 마음만 앞섰지 집에 들어가면 곤히 자고 있는 딸 아이 옆모습만 지켜보곤 했습니다. 비록 가족에게는 소홀했지만 나름 번듯한 회사에 다니며 만족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직장에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면 나중에 가족들이 알아주겠지. 저녁에 대학원도 다니며 자기계발도 열심히 하니까 딸아이도 언젠가는 이런 아빠를 이해해 줄 꺼야.”하며 말입니다. 딸이 크면 “아빠는 이렇게 성공했다.” 같은 영웅담을 혼자 써나가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러던 중 연초 직장생활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습니다. 대규모 구조조정이 생겼고 급기야 퇴직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퇴직했다는 사실이 점차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매일 아침 언제나 몸을 가볍게 만들어 주던 헬스장을 가도 운동이 천근만근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동료들과 함께하던 커피 한 잔의 여유가 어느 순간 불안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점점 무너지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 생전 처음 실업급여를 받으러 갔는데 경제적 안정감을 느끼기보다 패배감과 굴욕감이 앞섰습니다. 평소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자존감도 센 편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저에겐 부모님이 계셨고 아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세상으로부터 온전히 지켜야 하는 딸이 있었습니다. 정말 다행인 건 아내는 내가 무슨 말을 하던 끈기 있게 끝까지 이야기를 들어주고 고민해 주었습니다. 물론 고민이 직접적인 해결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후회와 반성의 늪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주었습니다. 당시에는 모든 것이 제 잘못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런 와중에 와이프가 부자유친이라는 프로그램을 소개시켜 줬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흔쾌히 응했을 텐데 심리적으로 많이 불안한 때라 망설여졌습니다. 몇 일전 딸이 “아빠 왜 슬픈 표정이야?”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잠시 약했던 찰나의 순간을 들켜 당황했습니다. 아빠는 항상 씩씩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그래서 이 다음에 딸이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든든한 버팀목이 돼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딸에게 더욱 미안해졌습니다. 억지웃음을 지어보이며 딸을 안심시키고 이내 거짓말했다는 죄책감에 또 미안해졌습니다. 저는 지금이 자신을 더 채찍질해야 하는 시기라 생각했습니다. 부자유친이라는 프로그램에 참가할 시간에 더 열심히 구직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한 달에 한번 하는 프로그램마저 참가할 시간이 없다면 평생 7살적 딸아이의 모습을 간직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얼마 들어?”라고 물어봤는데 무료라고 했습니다. “무료?" 비용이 들어가지 않는 프로그램이구나.” 사실 다행이라는 생각보다는 그저 그런 프로그램일 것 같아서 시간 낭비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우선이었습니다.

그래도 평소 딸과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했던지라 자의반 타의반 첫 번째 일정에 참가했습니다. 처음이라 허둥지둥 길도 제대로 못 찾고 1시간이나 늦게 도착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어색하게 인색하고 맨 뒤쪽에 자리 잡았습니다. “두시간 짜리 프로그램인데…….1시간이 늦었다. 벌써 다 끝난 건 아닌가? 맨 뒤쪽이라 딸이 실망하면 어떡하지. 눈도 나빠서 잘 안 보일 텐데……. 안경도 못 챙겼네~.” 이런 저런 생각이 들던 찰나 “와…….케익이다.” “아빠 이 초콜릿 먹어도 돼~” 딸은 눈앞에 펼쳐진 과자, 초콜릿, 빵에 눈이 휘둥그레 해져 있었습니다. 평소 집에서 건강을 이유로 단 음식들을 많이 못 먹게 했는데 눈앞에 잔뜩 펼쳐진 과자들을 보며 놀라워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케이크를 만들꺼예요~ 이렇게 빵으로 집을 만들고 그 위에 생크림을 놓아주세요. 그런 다음 앞에 놓인 과자와 초콜릿 등으로 예쁘게 꾸며주세요.” 딸아이와 저는 늦게 참여했지만 보조 강사님 덕분에 무사히 시간 내 케이크를 완성시킬 수 있었습니다. “다 만든 케이크는 집에 가져가도 되요~” “아빠 빨리 집에 가서 엄마랑 같이 먹자. 엄마한테 자랑해야 겠다 그치?” 한 입 정도는 먹고 싶었을 텐데. 꾹 참는 걸 보니 역시나 엄마 사랑이 참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케이크를 본 와이프는 돈 주고 참가한 쿠킹 클래스 케이크보다 낫다며 이렇게 상자까지 담아서 온전히 주는 경우는 처음 봤다며 놀라워했습니다. 그날 우리가족은 점심 저녁 그리고 그 다음날까지 후식으로 케이크를 먹었습니다. 산 케이크보다 맛과 모양이 좀 떨어졌지만 딸이 케이크를 잘라서 나눠주는 모습이 기특했습니다. 물론 자기 케이크는 제일 크게 자르고 맘에 드는 토핑을 모조리 쓸어 가기는 했지만…….

그리고 한 달이 지났습니다. 전 여전히 심적으로 불안한 상태였고 티를 안내려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덧 다음 체험 활동시간이 돌아왔습니다. 부자미술놀이였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걱정을 인형에 담아서 가져갈 꺼 예요~ 걱정인형에 자신의 불편했던 감정을 담아서 표현해보세요.” 역시나 아이는 재미있게 참여했습니다. 오히려 아빠인 제가 중간에 딴 생각을 해서 진도를 놓쳤습니다. 확실히 육아는 부모 마음이 안정되는 게 우선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고 부자 프로그램에 몰입해 봅니다. 딸과 함께 같이 걱정인형 눈도 붙이고 코도 붙이고 배에는 그림도 그렸습니다. 비록 그때 만든 걱정인형이 딸아이의 베개 밑에서 딸아이의 걱정이나 내가 처한 상황을 개선하지는 못했지만 우스꽝스럽게 만들어진 걱정인형은 지금 우리 집 현관 앞에 떡 하고 자리잡고 있습니다.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걱정인형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존재가치가 희미해져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 어설픈 걱정인형을 보며 딸이 아프지 않고 여기까지 와 준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습니다. 때 되면 몇 달 동안 다양한 프로그램을 소화했습니다. 가까운 동물원도 가고 신체놀이도 했습니다. 평소에 딸이 조심성이 많은 편이라 신체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할 것 같았는데 오늘 보니 선생님 말씀을 참 잘 따릅니다. 대형 줄넘기에도 용감하게 돌진합니다. “성공이다.” 환하게 웃는 딸의 얼굴을 가까이서 보니 눈도 작고 코도 낮았습니다. 그런데도 웃는 게 참 예뻐 보였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좋은 건 아이와 오전에 부자활동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면 되도록 오후에는 별도 스케줄을 잡게 되지 않는 다는 점입니다.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전에 아이와 함께 오전부터 오후까지 놀 수 있게 되리라고 상상하기 힘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다시 직장을 잡고 마음이 안정되었습니다. 덕분에 아이와 더 잘 놀게 되었습니다. 부모가 안정 되어야자 식이 안정 속에서 자랄 수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이는 아빠뿐만 아니라 엄마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지난 날 육아를 함께 도와주지 못해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육아가 참 힘든데……. 아빠들은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육아를 함께하는 게 익숙하지 않습니다. 노는 방법도 배워야잘 놀 수 있습니다. 아이와 함께하는 동안 가끔씩 언젠가 나 자신도 어린이대공원에 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부모님과 함께 했던 행복한 기억이떠 올랐습니다. 아이를 통해 나와 부모님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봤습니다. 저는 확실히 사랑받고 자랐습니다. 저는 우리 아이가 더욱 많은 사랑을 받고 자라길 원합니다.

여기 참가했던 부모들 모두가 서로를 배려하며 양보했습니다. 언제까지 이런 사려 깊은 마음을 다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우리 딸이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려면 결국 부모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느꼈습니다. 결국 자식은 부모의 또 다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에 이런 프로그램이 있다면 당연히 참가하겠지만 이제 스스로 무언가를 찾아서 꾸준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목표는 둘이서 해외여행 다녀오기. 해외 출장을 다녔을 때 ‘아~ 여기는 딸하고 오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던 장소가 참 많이 있습니다.

 

워싱턴D. C 자연사 박물관을 아이와 함께 손잡고 걸으며 공룡 세계에 빠져보기도 하고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공놀이 하며 땀 흘리며 뛰어 다니고 싶습니다. 호주 멜번에 야라강 주변에서는 밤늦게 야경을 바라보며 단 음료수도 같이 먹고 싶고 일본 료칸 온천에서느 긋한 하루를 보내고 싶습니다. 물론 집 근처 공원도 시간날 때 마다 함께 할 것입니다.

 

부자 놀이 프로그램이 연간활동으로 이뤄지고 다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80%정도 참여한 것 같습니다. 연간 프로그램이라 부담이 될 법도 한데 아이와 함께하는 것은 차순위가 아닌 우선순위로 바뀌면서 부담보다는 최소한 의무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최소한 이것은 꼭 아이와 함께 한다는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약속입니다. 무엇이든 지속적으로 무엇인가 함께 한다는 습관 자체가 중요합니다. 함께한 시간에 대한 결과물이라고 하면 그렇지만……. 2018년 11월 17일 7살 딸아이가 아빠랑 같이 자겠다고 베개를 들고 큰 방으로 건너왔습니다. 아이가 옆에 와서 잡니다. 자려는데 자꾸 이것저것 물어봐서 좀 귀찮기도 하지만……. 더 크면 아마 이런 종류의 행복은 없을 것입니다. 행복합니다. 오늘 맘껏 껴안고 자려고 합니다. 딸아이가 더 크면 안 되는데… 고맙다. 사랑해.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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