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프로젝트 후기] 아이의 세상에 초대된 하루 <아빠랑 숲체험>

아이의 세상에 초대된 하루 <아빠랑 숲체험>

2022 아자프로젝트 우수후기 공모전 장려 (이종헌 | 구로구가족센터)
 
 
 
 

아침부터 하늘도 흐리고 비도 보슬보슬 내린다. 일기 예보를 보니 하루 종일 비가 오락가락 내린다고 했다. 오늘은 구로구 아자프로젝트 프로그램 중 항동 수목원으로 ‘아빠랑 숲체험’을 하는 날인데, 하루 종일 비가 온다고 하니 이래저래 걱정이 앞섰다.

비 오는 날 유하와 둘이 외부에 나가 놀았던 적도 없었는데, 처음으로 가보는 수목원이다 보니, ‘아이가 낯설어하지 않고 잘 놀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아침부터 마음이 심란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걱정을 덜기 위해 나가기 전 만반의 준비를 하기로 했다. 우산과 우비를 챙기고, 물웅덩이에서도 유하가 첨벙첨벙 놀 수 있도록 헬로키티 장화도 꺼내 두었다. 혹시라도 옷이 젖을 수 있으니 여분의 옷들과 수목원을 돌아다니다가 넘어져 다칠 경우를 대비해 비상약품도 챙겼다. 이것저것 외출 용품을 챙기다 보니 가방을 가득 채웠고,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 밖에 나갈 생각에 신난 유하와 함께 항동 수목원을 향해 집을 나섰다.

 

수목원까지 차로 1시간 정도 걸렸는데 비도 오고 날도 우중충하다 보니, 기분이 들떠 노래 부르던 유하가 어느새 잠이 들었다. 약속 시간보다 좀 더 일찍 수목원에 도착했는데 비가 더 거세져 차 안에서 비가 잦아들길 기다리고 있는데, 그새 유하가 잠에서 깨 밖에 나가자고 졸랐다.

 

차 안에서 유하에게 우비를 입혀 밖으로 나가니, 빗소리를 들으며 비를 맞는 게 기분이 좋은지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렇게 놀다 보니 프로그램 시작 시간이 되었는데, 비가 점점 잦아들더니 시작할 때는 완전히 그쳐서 유하는 조금 아쉬워하는 표정이었지만, 나는 속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오늘은 아자프로젝트에 참가하는 10명의 아빠들이 오프라인으로는 처음으로 모두 모이는 날이었다. 지난주까지 Zoom 온라인으로만 인사했던 아빠와 아이들을 실제로 만나니 더 반가운 마음으로 인사하며 얘기를 나눴다. 이날은 세분의 숲체험 선생님께서 오셔서 세 개로 팀을 나눠 숲을 돌아다니며 설명을 해주셨다. 우리 팀의 숲 체험 선생님은 ‘라바 선생님’이셨는데 마침 같은 팀 서윤이의 우비가 노란색 라바라서 같은 이름이라고 반갑게 인사하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숲체 험을 시작하였다. ‘라바 선생님’은 항동 수목원에서 자라고 있는 여러 식물들의 이름과 특징을 설명해 주셨는데,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재밌게 설명을 해주셔서 선생님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옆에 졸졸졸 따라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이 귀엽고 기특했다. 한 번은 선생님께서 꽃 설명을 하시다가 가방을 열어 플라스틱 통을 하나 꺼내셨는데 그 안에는 살아있는 꿀벌이 들어 있었다. 아이들에게 꽃을 좋아하는 꿀벌을 가까이 관찰할 수 있도록 챙겨 오셨는데, 처음에는 무서워하며 멀리 떨어져 보고 있던 유하도 선생님과 친구들의 응원에 힘을 얻어 가까이 다가가 관찰하였고, 나중에는 플라스틱 통 안으로 꽃도 넣어주며 기뻐하였다. 혼자만 있었으면 무서워 도망가거나 내 뒤로 숨었을 유하가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하며 용기를 가지고 행동하는 모습에 둘이 있을 때는 보지 못했던 아이의 대담함을 엿볼 수 있었다.

 

꽃 그리고 꿀벌과 함께 수목원 여행을 시작하다 보니 조금씩 내리던 비가 멈춰 아이들의 우비를 벗겨 편한 복장으로 이동을 하였다. 그러다 중간에 꽃과 나무로 둘러싸인 오솔길이 있었는데, 갑자기 선생님께서 아이들을 멈춰 세우셨다. 그러고는 아이들에게 달리기 시합을 하자고 얘기하셨는데, 가만히 선생님이 해주시는 이야기만 듣고 돌아다니면 아이들이 지루해한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달리기 소리에 신난 아이들은 선생님의 신호에 맞춰 달리기 시작하였고, 뛰면서 들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흐린 날씨에 차분하게 가라앉은 숲 체험 분위기를 생동감 있게 만들어주었다.

 

 

달리기를 마친 아이들과 손잡고 다시 길을 걷는데 선생님께서 길옆에 핀 꽃을 따오시더니 아이들에게 꽃팔찌를 만들어주셨다. 유하도 차례를 기다려 선생님께서 꽃팔찌를 손목에 채워 주셨는데, 선물이 마음에 드는지 한참 동안 차고 다니며 꽃잎을 쓰다듬어 줬다.

꽃팔찌로 인해 아이들의 인기를 듬뿍 받은 숲 체험 선생님은 여자아이들이 모여있는 팀의 성향에 맞춰 섬세하고 따뜻한 설명으로 숲 체험을 이끌어 나가셨고, 아빠와 아이들도 즐겁게 숲을 즐길 수 있었다.

 

 

한 시간 정도의 팀별 숲 체험을 마치고 수목원 안에 있는 정자에 모두 모여 쉬면서 얘기를 나눴다. 다른 아빠들도 처음엔 비 오는 날 아이와 함께하는 외부 활동에 걱정이 많았다고 했는데, 수목원을 돌아다니다 보니 비와 어우러져 분위기도 있고, 숲 체험 선생님이 함께하여 아이들과 재밌는 추억과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다는 말에 서로 공감하며 얘기 나눌 수 있었다.

잠시 아빠와 아이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이 숲 체험 선생님들께서 새 모양 목걸이 피리를 만들자며 재료들을 나눠주셨다. 망치질도 하고 그림도 그리며 만드는 피리였는데, 집에서는 뭔가를 만들 때 조금 하다가 안된다 싶으면 아빠 보고 만들어 달라고 졸랐던 유하였는데, 다른 친구들이 혼자 만드는 것을 보면서 자기가 하겠다고 재료들을 자기 앞에 두고 만들기 시작했다.

새 모양 나뭇조각에 색칠도 하고 고무 망치로 망치질도 하면서 피리를 만들어갔고, 마지막에 목걸이 줄도 자기가 끼겠다고 하여 스스로 만들 수 있게 기다려 주었다. 작은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줄을 왔다 갔다 하다가 마침내 고리에 줄이 껴졌을 때 담담한 유하와는 달리 나는 성공의 환호성을 지르며 유하를 칭찬해 주었다.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유하는 바로 목에 걸어 피리를 힘껏 불었고, ‘휘잇~!’ 소리가 제대로 나는 걸 듣고는 기뻐하며 찡긋 눈웃음을 보여주었다. 집에서는 유하가 이렇게까지 스스로 만들려 노력하는 걸 보지 못했었는데, 친구와 함께하며 용기와 자신감을 얻는 모습이 기특하여 아이를 껴안아 잘했다며 축하해 주었다.

 

 

피리 만들기를 마치고 오늘의 마지막 프로그램인 꿀벌 게임을 하기 위해 모두 정자 밖으로 나갔다.

꿀벌 게임은 두 팀으로 나눠 순서를 정한 후 아이와 아빠가 출발하여 카드에 나오는 모양에 따라 꿀벌처럼 빙글빙글 돈 후 테이프 반지로 노란색 꿀을 따와 꿀벌 집을 채우는 게임이었다. 다들 처음 하는 게임이라 어색해했지만, 아빠와 아이 간의 협동으로 즐겁게 게임을 즐길 수 있었고, 결국 우리 팀이 먼저 꿀벌 집에 꿀을 다 채워 게임을 이겼고, 승리의 하이파이브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모든 프로그램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다 같이 모여 단체 사진을 찍으며 오늘의 일정을 마쳤다.

처음 숲 체험을 시작할 때는 오프라인 첫 모임이다 보니 아빠도 아이도 어색하고 서먹한 분위기였는데, 아이들이 먼저 서로 어울리고 친해지면서 아빠들도 동화되어 점차 마음 열고 얘기하며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육아휴직을 하고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아이의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생겼다는 거다. 어른의 세상에서 바라봤었던 유하는 작고 연약하여 항상 보호해 줘야 하는 존재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만든 세상에서의 유하는 그 누구보다 씩씩하고 대담하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건강한 아이로 성장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크고 강한 아이로 자라고 있는 유하를 그동안 어른의 눈으로 보면서 작고 약하게만 생각하여 내 안에 감싸려고만 했던 건 아닌가 반성을 하게 되었다.

존재만으로도 소중한 아이의 세상이 어른들의 말과 행동으로 그 빛을 잃지 않도록, 앞으로도 아이의 세상을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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