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가족상담 후기] 어린 시절 나와의 약속
어린 신부의 행복 결혼 준비기
2023 서울가족사업 우수후기 공모전 / 우수상 / 가족상담지원사업 (노원구센터/차수현)
“삑삑삑”
현관문 도어락을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집에 들어오고 있다는 뜻이다. 도어락을 누르는 소리가 들려오면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초조한 마음으로 현관 쪽을 바라본다. 학교가 끝난 후 귀가한 아들이다. 긴장이 풀린다. 그리고 깨닫는다.
‘아, 이제 아빠 없지’
어린 시절, 아빠가 집에 올 시간이 되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도어락을 누르는 소리가 들리면 초조한 마음으로 현관 쪽을 바라보았다. 아빠는 늘 화가 나 있었다. 화가 난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화난 아빠가 어떻게 가족을 대할지 알고 있었다. 아빠는 잔뜩 성이 난 얼굴로 스카치테이프를 들고 다니며 바닥을 찍어댔다. 스카치테이프에 붙은 머리카락을 주워들고 누구 것이냐고, 아빠는 격앙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가족들을 닥달했다. 목소리는 크고 날카로웠다. 평화로웠던 집안 분위기는 아빠의 귀가와 동시에 긴장과 공포로 휩싸였다.
결혼할 때 가장 좋았던 것 중에 하나는 더 이상 아빠가 집에 오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아빠의 불호령이 언제 떨어질지 불안해하지 않아도 됐다. ‘혹시 내가 잘못한 게 없을까’를 고민하지 않아도 됐다. 그보다 마음 편하고 행복한 일은 없었다. 하지만 현관 쪽에서 인기척이 날 때마다 초조해지는 건 여전했다. 오랜 기간 동안 몸이 반응해왔던 탓이다. 이젠 아빠가 세상에 없는데도 이러는 걸 보면 말이다.
아빠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던 해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는 아빠의 장례식장에서 뒤집기를 했다. 아빠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슬픔과 아기가 이만큼 자랐다는 기쁨이 뒤엉켜 울며 웃었다. 이제 막 백일이 된 나의 아기를 안으며, 내가 아빠에게 느꼈던 긴장과 공포를 느끼지 않게 해주겠다고 다짐했다. 부모는 아이를 지켜주는 사람이지 불안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해주고 싶었다. 아이의 감정에 공감해 주려고 노력했고, 작은 말에도 귀 기울였다.
하지만 아이가 고학년이 되기 시작하면서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이의 과도한 인터넷 사용이 문제가 됐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뒤처질 수 있다는 조급함과 불안함이 나를 압도했다. 아이에게 소리 지르는 날이 잦아졌다. 아이가 보고 있던 노트북을 거칠게 닫으며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내가 집에 오면 거실에 있던 아이가 문을 닫고 방에 들어가곤 했다. 아빠가 집에 오면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던 나의 모습이, 나와 내 아이의 사이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어쩌면 아이도 나를 미워하게 되겠구나, 아이도 나중에 내가 없는 것을 편안하게 여기는 날이 올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고 싶었지만, 마음과 다르게 아이와 나는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고민의 시간이 길어졌다. 우연히 노원구 가족센터에서 가족상담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하는 ‘디지털중독 예방 집단상담’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오랜 시간 아이를 간신히 설득해 함께 참여하게 됐다.
디지털 중독 예방 집단상담 프로그램이니, 수업 내용이 사뭇 무겁고 진중 할 것이라 생각했던 나의 예상과 다르게 프로그램은 시종일관 유쾌하고 즐거웠다. 매시간 웃음소리가 넘쳤다. 처음엔 프로그램 참여에 시큰둥해했던 아이도 첫 시간 참여 이후부터는 적극적이었다. 함께 보리 새싹을 심고 퀴즈를 풀고 게임을 하면서 아이는 진심으로 즐거워했다. 특히 나무막대기를 이용해 몸을 움직이는 활동 시간에는 온 신경을 집중하며 몰입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즐거운 감정은 사람의 마음을 무장해제 시킨다. ‘여기 엄마랑 재밌게 게임하고 노는 곳이구나’라고 인식하게 되면서부터 아이에게는 집단상담 참여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졌다. 제발 한 번만 같이 참여하자고 빌고 또 빌었던 이전의 내 모습이 무색해질 정도로 아이는 주말 오전, 일찌감치 옷을 챙겨입고 현관문에서 나를 기다렸다.
프로그램 내용 중 그립톡, 수면등 만들기 등의 활동은 ‘엄마와 뭔가를 함께 해냈다’는 성취감을 아이에게 느끼게 해줬다. 이런 사소한 활동을 아이가 즐거워할 거라고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아이가 열 살이 넘은 이후부터 아이와 이렇게 무언가를 함께 한 적이 없었다.
나는 지시하고 명령하는 ‘관리자’였을 뿐 아이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엄마’가 아니었다. 강사님이 내주신 퀴즈를 풀기 위해 나의 의견을 묻고, 다양한 모양의 과자로 가족의 모습을 만드는 아이에게 필요한 건 엄마였지 관리자가 아니었다. 버킷리스트 쓰기에 열중하는 아이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들로 마음속이 복잡해졌다.
어린 시절의 나는 따뜻한 아빠를 원했다. 나를 사랑 가득한 눈으로 바라봐주는 아빠, 내가 실수를 해도 부드럽게 감싸주는 아빠, 무조건 내 편이 돼주길 바랐던 아빠. 나는 그런 아빠를 원했지만, 아빠는 늘 화가 나 있었고, 엄격하기만 했다. 이제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된 지금, 사랑을 듬뿍 표현해 주는 부모가 되자고 마음을 먹었던 다짐은 어느새 희석되어 있었고, 피하고 싶었던 아빠의 모습으로 아이를 대하고 있었다. 거칠게 아이를 다그치는 내 모습에서 아빠가 보였고, 나를 피해 방으로 들어가는 아이는 어린 시절의 나와 영락없이 꼭 닮아 있었다.
어린 시절의 내가 그랬듯, 부드럽고 사랑으로 충만한 엄마를 그리워하고 있었을 아이는 가족 상담 시간의 프로그램을 통해 원하던 엄마를 오랜만에 마주하게 됐다. 아이의 까만 눈망울과 해맑은 웃음을 보며 엄마로서의 내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 내가 기억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되새겨보게 됐다.
어쩌면 디지털중독 예방이라는 것은 아이와 나의 관계 속 하나의 표면적인 문제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보다 더 우선하는 본질은 나와 아이의 관계라는 것, 더 정확하게는 아이를 대하는 나의 태도라는 것을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이런 프로그램이 몇 십년 전에도 있었다면, 그리고 아빠와 내가 참여했다면, 아빠와 나도 좀 더 사랑을 표현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데면데면한 아빠와 딸이 아닌 다정한 부녀가 되지 않았을까.
마지막 집단상담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 옆에서 걷던 아이가 슬쩍 내 손을 잡는다. 언제 이렇게 컸는지 손의 골격이 꽤 두툼하다. 아이와 손을 잡고 걸었던 것이 언제였는지, 미안함과 뭉클함에 가슴이 찡해진다. 낯설게 자라버린 아이의 손을 맞잡고 싱긋 웃으며 아이와 길을 걷는다.
아이에게 욕심이 생길 때마다, 뒤처지는 건 아닌지 불안해질 때마다, 지금 하는 것들이 맞는 것인지 혼란스러울 때마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늘려 가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아이에게 ‘인터넷 좀 그만하라’고 다그치기보다는 지금처럼 아이의 손을 잡고 청명한 가을 공기를 느끼며 함께 걸어보겠다고 다짐한다. 아이에게 더 많이 웃어주고, 행복하게 해주는 엄마가 되겠다고, 어린 시절의 나와 조용히 약속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