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서울가족학교-예비·신혼부부교실 참여후기] 인생에도 사계절이 있다면
인생에도 사계절이 있다면
2024 서울가족사업 참여후기 공모전 / 장려상 / 서울가족학교-예비·신혼부부교실 (동작구가족센터_이한아)
#인생 #계절 #만남과 이별 #새로운 가족
안녕? 내 이름은 땡이. 15살 스트릿 출신 강아지야. 길거리는 너무도 춥고 무서웠지만 지금은 따듯한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견생을 보내고 있지! “우당탕탕!” 오늘도 우리 언니의 아침은 그 누구보다도 치열한가 봐. 만날 학교에 가기 싫다는 언니를 보면서 엄마는 “저 애를 도대체 누가 데려가려나...”라며 혀끝을 쯧쯧 차시지만, 나는 언니를 구석구석 핥아서 사랑으로 깨워줄 거야. 언니가 자기는 절대로 지각하면 안 된다고 했거든!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우리 언니가 선생님이어서 그럴걸? 어쨌든. 땡이, 출동!
아침부터 정신이 없어서 내 소개를 할 시간도 부족하지만, 오늘은 특별히 알아내야 할 게 있어서 조금 바쁜 날이야. 요즘 우리 언니가 정말로 수상해 보이거든. 자꾸만 날 보고 이상한 표정을 짓는가 하면, 나만 두고 긴 여행을 갔던 때처럼 커다란 짐을 챙기기도 해. 심지어는 생전 안 하던 요리까지 하지 뭐야? 정말 너무 수상하지? 도대체 왜 이러는지 알아내고 싶어서 언니가 학교 간 사이에 일기장을 살짝 훔쳐보려 해. 쉿! 비밀이야!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잖아? 이날을 위해 열심히 갈고 닦은 나의 한글 실력을 뽐내볼게. 내가 실수하지 않도록 함께 읽어봐 줘.
인생에도 사계절이 있다면 그렇다면, 나는 초여름 그쯤일까? 뜨거운 여름 같던 20대 시절과 함께 내 사랑은 차갑게 끝이 났다.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지, 또 누구를 사랑했는지도 모를 만큼 마음이 불안하고 자신은 없어졌다. 내가 누군가를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가면 나는 또다시 그 공백을 감당할 수 있을까? 마치 가을 나무처럼 위태롭게 남아있는 마음들마저 일부러 떨어뜨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여전히 겁이 많은 어른아이 같은 내가 30대의 삶마저 불안하고 초라하게 맞이하게 될까 두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전한 나로서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큰 힘이 되어준 것은 단연코 사랑하는 가족들 덕분이었다. 가족이란 정말 특별하고 신비한 힘을 가졌나 보다.
달이 차고 이울듯이 다시 한번 소중한 사람을, 새로운 가족이 될 존재를 만나게 되었다. 내 삶에 다시는 없을 줄 알았던 사랑이라는 얄팍한 단어. 나아가 결혼이라는 큰 결심. 변화된 삶과 뒤집힌 생각들에 감사하면서도 혼란스러움이 공존하는 때이다. 새로운 가족이 생기는 마음 벅찬 일이 내 삶에도 있다니! 뭔가 기대가 되면서도 신기할 따름이다. 하지만 동시에 내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탓인지 불안감이 스멀스멀 생겨났고, 도대체 어떤 노력을 해야 새로운 가족을 잘 꾸려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많아졌다. 마침 동작구 가족센터에서 운영하는 예비부부 교실을 추천받아 다녀온 뒤로, 나의 선택에 있어서 자신감이 생겨난 것은 물론이고 사랑을 바라보는 관점과 내가 지켜나가야 할 태도 등을 결혼 전에 점검해 볼 수 있어서 너무도 다행이었다.
특히 나와 상대방이 가지고 있던 인생의 서사를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 것, 대화하는 방식과 표현 방법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맞춰 나갈 용기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 마지막으로 가족에 대한 의미를 책임감 있게 공유하는 동시에 원가족과의 건강한 거리 또한 적절히 유지해야 한다는 것 등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은 복잡하고 어려운 생각들을 회피해 오기 마련이었는데, 예비부부 교실을 통해 어른아이에서 진짜 어른으로 성장하는 듯한 꽤나 낯설고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나 자신과 상대방을 더욱이 사랑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음에 감사한다.
그나저나 한편으로는 요즘 기력이 없어져 가는 땡이를 보니까 자꾸만 눈물이 나고 한없이 미안해진다. 바쁘게 결혼식을 준비하다 보니 정작 우리 땡이한테는 신경을 더 많이 못 써주는 내 모습이 너무나도 못나 보인다. 땡이가 나의 가족이 된 그날 이후로, 내 삶에서 많은 단어들을 완전히 새롭게 다시 정의 내릴 정도로 땡이는 나에게 많은 것들을 사랑으로 가르쳐 주었다. 가난하고 외롭던 어린 시절, 내 앞에 기적처럼 나타나서 가족이 되어준 존재. 따뜻한 사랑으로 내가 느끼던 공허함을 가득 채워준 소중한 나의 가족.
그 누구보다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땡이야! 영원히 너와 같은 계절에 맴돌고 싶은데 지금 너의 계절은 어디쯤이니? 나에게 넌 늘 푸르른 봄날 같은데 말이야. 변함없는 사랑을 줄 수는 없어도, 변함없이 너를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
한글 공부를 괜히 했나? 언니의 마음을 알게 되니까 나도 속상하고, 언니랑 계속 같은 집에 못산다고 생각하니까 정말로 슬퍼. 나도 언니한테 마음을 담은 글을 남기고 싶은데 혹시 좀 도와줄 수 있을까? 내가 없을 때 언니가 이 글을 보고 힘을 냈으면 해. 도와준다고? 그럼 이야기 해볼게! 고마워!
언니, 안녕! 나 땡이야. 우선 마음대로 일기장을 훔쳐봐서 정말 미안해. 언니가 너무 수상해서 참을 수가 없었지 뭐야? 날 보며 절대로 미안해할 필요 없다고, 짐 빠뜨리지 않게 잘 챙기라고, 맛있는 요리 많이 해 먹고 잘 살라고 꼭 이야기 해주고 싶었어. 참, 언니가 지난번에 집으로 데려온 그 사람이랑 결혼한다는 거지? 그분은 나에게 맛있는 간식도 주었고, 다정한 향기도 풍겼으니까 일단 합격이야! 무엇보다 언니 옆에 나보다 더 오래 있어 줄 수 있을테니 고맙네. 언니가 멋지게 만들어 나갈 새로운 가족이 그 누구보다도 따뜻하고 행복하기를 바라. 비록 나와는 조금 떨어지게 되어도 언니는 언제나 나를 사랑하고, 나도 영원히 언니를 사랑할 거야. 결혼 진심으로 축하해.
모든 계절의 냄새를 고루 맡아볼 수 있었던 건 전부 향기로운 언니랑 가족들 덕분이야. 나의 모든 계절에 함께 있어줘서 정말로 고마워. 만약에 내게도 또 한 번의 봄이 찾아온다면 나는 또다시 우리 가족을 만났던 그날을 떠올리며 따뜻한 봄을 만끽하고 싶어. 하지만 추운 겨울이더라도 나는 언니 옆에 누워 포근히 잠들면 그 누구보다, 그 어떤 것보다도 행복하고 벅찰거야. 그러니 내 계절이 어디쯤인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언니, 나 없다고 학교에 지각하면 안 된다! 진심으로 사랑하고 고마워. 땡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