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서울가족학교(아동기부모교실) 참여후기] 성으로 만나는 존중의 시작
성으로 만나는 존중의 시작
2025 서울가족사업 참여후기 공모전 / 장려상 / 서울가족학교 아동기부모교실 (중랑구가족센터_허지오)
아이를 낳아 기르며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아이가 부모 생각만큼 자란다는 점이다. 바꾸려 하기보다, ‘엄마’인 내 자세와 말투, 작은 행동의 조각이 모여 우리 가족을 바꾸고 있다. 아동기 부모교실은 그런 의미에서 내 생각을 넓혀주는 하나의 창이었다. 여느 부모가 그렇듯 육아는 “어떻게 소중한 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라는 물음으로 시작한다. 걱정, 기대, 설렘, 힘듦, 지침, 불안… 결혼 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희망과 불안이 공존하는 혼란의 연속. 그런 초보 엄마에게 가족센터에서 들었던 훈육과 감정 코칭, 놀이법이나 대화법 등 다양한 강의는 분명 적잖은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내 세계를 새롭게 만들어준 것은 다름 아닌 ‘성교육’이다. 사실 성교육은 늘 멀고 어려운 주제다. 중요하다는 말은 수도 없이 들었지만, 너무 막연했고 어려워서 미루게 되는 숙제 같은 주제다. 게다가 아직 난 모든 것을 아는 척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알고 있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단 하나 와 닿았던 깨달음이 있다. 성은 ‘존중’에서 시작된다.
“우리 부모님도 안 그러는데…”
수업에서 들은 한마디는 내가 학교에서 배웠던 지식으로서 성교육과 사뭇 달랐다. 소위 ‘정자와 난자’로 점철된 지식만 배웠던 내게 왜 성이 존중인지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 존중이 아이의 자존감과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깊이 이해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장난하며 가볍게 스킨십을 할 때, 안아줄 때, 뽀뽀하거나 간지럼을 태울 때조차 아이의 의사를 먼저 물어볼 것. 그리고 아이가 “싫어”라고 말하면 반드시 멈출 것. 또 친척이나 지인에게 스킨십을 ‘억지로 시키지 말 것. 이 같은 내용들은 내가 아이에게 애정으로 했던 행동을 떠오르게 했다.
아이가 “그만해요”라고 말해도 웃고 있으니 계속하던 간질이던 순간, 할머니에게 가서 뽀뽀하라고 하던 등 떠밀었던 일. 내가 먼저 물어보지 않고 안거나 만져왔던 일상들... 비록 ‘사랑하니까 당연한 행동’이었지만, 그 때 나는 내 아이의 의사에 대해서 생각했을까? 애정이라는 이름으로 아이의 의사를 무시한 건 아니었을까? “내가 부모니까. 사랑하니까. 이 정도는 괜찮아.” 그런데 괜찮지 않았다. 그런 부모 모습이 아이에게 ‘사랑의 형태’로서 내면화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게 너무 사무쳤다. 부모가 먼저 묻고 싫다는 의사를 따라주고 서로 잘못에 대해 사과하고 항상 그 경계를 존중해주는 일상에서 아이는 배울 것이다. “엄마, 아빠도 내가 싫다면 멈추고 날 존중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구라도 내가 싫다고 하면 멈춰야 하는 게 맞다.” 이건 성교육 출발이자 내 몸의 주인으로서 자라나게 될 기반이며, 내 아이가 만들어갈 자존감의 시작이었다.
강의를 들은 후 일상에서 작은 변화를 실천하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스킨십을 하기 전에 “~해도 돼?”라고 묻고, 싫다면 바로 멈춰 주었다. 샤워 후에는 샤워가운을 입히고 문을 닫아 주었다. 사진을 찍거나 업로드 할 때도 아이에게 먼저 보여주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가 대소변을 처리하거나 옷을 갈아입는 순간에도 아이의 의사를 존중했다, 그런 사소한 일상에 ‘성’이 있고, ‘존엄’이 있었다. 이제 나도 알고 있다. 아이 신체 발달이나 학업. 훈육보다 더 먼저였어야 했던, 하지만 난 ‘개념조차 없이 지나왔던 그 근본이 무엇인지. 성교육 수업은 내게 ‘지식을 배우는 시간’이 아니라 ‘존중을 통해 자신의 소중함을 다시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 배움은 우리 가족 모두가 서로를 존중하는 모습으로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