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맞돌봄프로젝트 참여후기] 아빠는 졌지만, 함께하는 우리는 이겼습니다.

아빠는 졌지만, 함께하는 우리는 이겼습니다

2025 서울가족사업 참여후기 공모전 / 최우수상 / 남성양육자 맞돌봄프로젝트 (강동구가족센터_지승재)

 

저는 보이지 않는 벽 앞에 서 있던, ‘반쪽짜리’ 아빠였습니다.

퇴근 후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반짝거리게 설거지를 하고, 칼같이 분리수거를 해내는 칭찬받는 남편이었지만 아빠로서는 낙제점에 가까웠습니다.

맞벌이로 지내다 아내가 육아휴직을 하면서 지난 몇 년간 육아는 온전히 아내의 몫이었고, 아들은 자연스레 ‘엄마 껌딱지’가 되었습니다.

퇴근 후 현관문을 열면, 아들은 제게 잠시 눈길을 주었다가 이내 “엄마!”하고 달려가 안기기 일쑤였습니다.

아이와 저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만질 수 있을 것처럼 단단한 벽이 존재하는 듯했습니다.

그 벽 앞에서 저는 아이 곁을 맴도는 서툰 주변인이었습니다.

어느덧 아내의 복직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아내는 오랜 공백 끝에 사회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아이를 돌보는 문제로 밤잠을 설치며 힘들어했습니다.

그런 아내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응원 섞인 따뜻한 저녁뿐이었습니다.

육아는 아이가 엄마만 찾으니 자연스레 아내의 몫이 되었고, 이런 살림과 육아의 분업은 제가 원하는 그림이 아니었습니다.

저도 진정한 공동 양육자가 되어 아내의 짐을 나누어지고, 아이와의 벽을 허물고 싶었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해결책을 찾던 중, 강동구 가족센터의 ‘함께 키움’ 프로그램을 만난 것은 우리 가족에게 내린 한 줄기 빛과 같았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서로 쭈뼛거렸습니다.

하지만 그 어색함은 활동이 시작되자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가족 네온사인 만들기 시간에 저희는 머리를 맞대고 사랑을 담은 붉은색 하트 모양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서툰 손으로 네온사인을 구부리고 선을 감아 완성한 하트에 떨리는 마음으로 스위치를 켰을 때, 선명한 빛이 공간을 채우는 순간 아들은 “아빠 우리가 만든 하트다!” 라며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어색했던 우리 사이에 마음의 문을 여는 따뜻한 신호탄 같았습니다.

자동차 키트 조립 수업은 우당탕탕 함께하며, ‘우리’가 되어간 시간이었습니다.

어른 손에 비해 너무 작은 부품들이라 자꾸만 손에서 미끄러졌습니다.

제가 끙끙대고 있자, 아들이 돋보기라도 든 것처럼 “아빠, 여기 나사 하나 빠졌어!”라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습니다.

함께 부품을 찾고, 설명서를 읽고, 때로는 실수도 하며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저희는 훌륭한 ‘팀’이 되어갔습니다.

 

그리고 다음 수업에는 전문 레크레이션 강사님의 유쾌한 진행 아래

함께하는 미니 운동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이번에야말로 프로그램 수업 시간동안 미더웠던 아빠의 모습은 지우고 이겨서 아들에게 멋진 아빠라는 말을 듣고 싶었습니다.

아들에게 “아빠 1등하고 올게”라고 말한 뒤 아빠들의 제기차기 대결에 나섰습니다. 아들의 힘찬 응원에도 제기는 자꾸 헛발질만 하게 됐습니다.

다른 아빠와의 악력 측정 대결에서도 힘없이 지고 말았습니다. 순간 민망한 마음에 아들 눈치를 살폈습니다.

아빠가 져서 실망했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실망하기는커녕, 제게 달려와 엄지를 치켜세우며 외쳤습니다. “아빠, 진짜 멋졌어! 최고야!”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1등 하는 아빠, 모든 것을 잘하는 완벽한 아빠가 아니었습니다.

이기는 아빠가 아닌 함께하는 아빠가 아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값진 승리였습니다.

저는 이제 아들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승리의 연속인 것을 압니다.

제가 아들과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동안, 아내는 오랜만에 온전한 자신만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복직을 준비하고 잠시나마 육아에서 벗어나 재충전하며 밝아진 아내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저는 이 프로그램이 우리 가족 모두에게 얼마나 큰 선물인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아내의 만족스러운 미소는 제게 또 다른 큰 보상이었습니다.

 

준비된 아빠로, 그리고 함께하는 남편으로.

‘함께 키움’의 가장 큰 장점은 단순한 놀이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자녀를 위한 성교육>, <대화카드 놀이방법> 같은 아버지 교육은 제게 큰 충격과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 때면 늘 공부하고 준비했지만, 정작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아빠’라는 역할은 아무런 준비 없이 덜컥 맡았다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특히 “자녀의 질문에 회피하지 않고 눈을 맞추며 답해주세요”라는 강사님의 말씀이 가슴에 박혔습니다.

민감한 질문에 “엄마한테 물어봐”라며 미뤘던 적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어떻게 대화를 시작해야 할지 최소한의 지도를 갖게 된 것입니다.

사회가 흔히 아빠의 역할을 ‘경제력’으로만 이야기하지만,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저는 어떤 아빠가 되어야 하는지, 아빠만이 채워줄 수 있는 영역은 무엇인지 비로소 배우며 성숙해질 수 있었습니다.

프로그램이 끝난 후 어느 날 저녁, 아들이 제 손을 끌며 말했습니다.

“아빠, 오늘은 아빠랑 잘래.” 처음에는 잘못 들었나 싶어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늘 엄마 옆에만 붙어 자려 하던 아이가 처음으로 저를 찾은 그 날 밤, 저는 곤히 잠든 아들의 숨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꼈습니다. 이제는 아들이 아빠랑 함께 있고, 싶고 놀고 싶다고 하는 게 일상이 되었습니다.

공동 육아의 씨앗, 사회를 바꾸는 작은 날갯짓

‘함께 키움’은 제게 아이와의 벽을 허물고, 아내에게는 재충전의 시간을 선물했으며, 우리 가족에게는 ‘공동 육아’라는 새로운 균형을 찾아주었습니다.

이제 저는 아빠도 주 양육자가 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고민하는 후배가 있다면, “아이를 위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시간은 너에게도 가장 큰 선물이 될 거야.”라고 진심으로 등을 떠밀어 줄 수 있는 선배이자 어른이 되었습니다.

한 가정의 작은 변화가 씨앗이 되어 사회의 모든 여성이 경력 단절의 두려움 없이 일하고, 아빠들이 육아의 기쁨을 온전히 누리는 세상이 올 거라고 믿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서툰 아빠들에게는 준비된 아빠가 될 기회를, 엄마에게는 함께하는 남편을 선물할 것입니다. 우리 가족의 성장을 이끌어주신 강동구 가족센터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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